"이념과 순수예술 사이에서"

지난 80년대에 대학문화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던 대학가의 노래패들에
끊임없이 되풀이돼온 화두는 이념과 예술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였다.

어두웠던 시대상황에서 이념의 무게는 너무나 큰 것이어서 이같은 논란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되곤 했다.

그러나 최근 이데올로기가 붕괴되고 학생운동도 대변혁을 맞이하면서 이런
고민은 강도를 한층 더해가고 있다.

80년대 대학가 노래패들은 특유의 젊은 열정으로 대학문화의 중심이 됐다.

70년대 포크문화로 대표되는 미국문화가 유입돼 반문화형태로 발전했고
유신정권의 탄압속에서 노래운동은 그 태동기를 맞이한다.

이후 김민기같은 걸출한 스타가 대중속에 자리잡아갔고 80년대 초반 민중
가요라는 독자적인 장르로 정착하게 된다.

특히 80년대 서울대의 메아리, 고려대 노래얼, 연세대 울림터, 외대 새물결
한양대 소리개벽, 이대 한소리 등 각 대학마다 노래패들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활발해졌다.

단순한 노래공연뿐만 아니라 마당극 풍물 노래가 함께하는 대규모 집체극이
유행하는가 하면 각종 대규모 집회에서도 노래패들이 두드러진 활약을 하게
된다.

대학문화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지위도 갖게 된 것도 이 시기다.

80년대 노래문화는 크게 두가지로 구분된다.

행진곡풍 빠른 템포의 노래로 "전대협 진군가"와 같은 전형적인 선동가와
함께 동료에 대한 위로와 격려를 소재로 한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등
발라드풍의 노래들도 인기를 모았다.

대학가 노래패들은 공연뿐만 아니라 직접 작사 작곡을 통해 다양한 민중
가요를 선보였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같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노래모임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까지의 노래운동은 가장 화려한 꽃을 피웠다.

행진곡이나 발라드풍의 노래뿐만 아니라 우리 고유의 가락을 바탕으로 한
정감넘치는 노래들도 이 시기에 선보였고 민주화물결을 타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그러다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학생운동이 대중성 상실이라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돼 대학가 노래패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문예단절의 위기감과 이념성 사이에서 진지한 고민이 대두됐고 대학가
노래패는 적극적인 창작활동과 콘서트위주의 활동으로 이를 극복해보려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학문화의 굵은 획을 그었던 노래패들의 이런 고민은 변화하는 대학사회에
서 새로운 형태의 건전하고 창조적인 문화를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 김남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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