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8년 국회5공청문회때 초선의 노무현 의원은 차분하고 논리정연한
질의로 국민과 호흡을 함께하는 스타로 부상했다.

그가 청문회에서 보여준 정보력과 빈틈없는 논리, 숨은 노력, 그리고
절제된 감정은 예술에 가까웠다.

그의 이같은 잠재력은 이제 정보통신분야에서 발휘돼 정당이나 단체
또는 중소기업운영에 적합한 그룹웨어를 개발해내기에 이르렀다.

그는 지난94년 국회의원과 변호사로 활동해오면서 조직 자료 일정 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줄 수있는 수단으로 컴퓨터를 택했다.

또 자연히 컴퓨터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에관한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처음에는 개인용으로 일정과 인명 자료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해
사무실에서 소규모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있는 수준의 제품을 개발했다.

노변호사는 프로그램개발과정에서 정당운영과 기업경영이 닮은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내친김에 인트라넷 환경의 그룹웨어로 발전시켜
"우리들"이라는 그룹웨어를 탄생시켰다.

컴퓨터 프로그램개발에 눈을 돌린이후 어느덧 이 분야의 박사급
못지않은 전문가가 된 셈이다.

"사용자의 요구수준이 높아야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수준도 높아집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그룹웨어는 원하는 기능을 프로그래머를 통해
끊임없이 채워넣는 작업의 연속이었다며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노변호사가 개발에 남다른 열정을 보인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부산상고를 졸업한뒤 사법고시를 준비할때 높낮이와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2단짜리 독서대를 개발,실용신안을 따내기도 했다.

그는 "하루 10시간 가량 책을 보는 사람의 숫자가 많지않아 사업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며 애써 개발한 독서대가 널리보급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노변호사가 PC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8비트시대 부터.

그러나 그당시는 PC가 주로 워드프로세서용으로 쓰일 때여서 활용은
주로 비서에게 맡겼다.

그가 본격적으로 컴퓨터 공부를 한것은 지난 94년 소프트웨어를
개발키로 하고 데이터베이스 (DB)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부터이다.

그러다보니 DB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이제는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제공할 제대로된 공개DB를 만들고
싶습니다"

노변호사는 우선 시민들이 정치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DB부터 만들겠단다.

이와함께 정치영역에서 다루고 있는 정책자료를 DB로 만들어 재야학자와
정치인이 정책방향을 놓고 상호교류할 수 있는 장을 여는 것도
정보통신분야에서 갖는 소박한 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