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연쇄부도를 내는 등 우리경제가 고통을 받고 있는 와중에
미국경제는 사상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미국경제가 되살아난데 대해서는 여러가지 분석이 있으나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연준)의 역할이 컸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한다.

통화가치를 안정시켜 인플레 없는 고성장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미국이 선진국이라 하지만 우리도 이제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다.

그런데 경제운용에 관해서는 왜 이리 차이가 나는 것일까.

무엇보다 통화정책에 관해서 우리나라가 아직 개도국 수준에 머물고
있는 탓이다.

우리는 가장 기초적인 통화정책 지표에 대해서도 확고한 원칙이 없다.

그래서 통화량이냐, 금리냐 하는 해묵은 논쟁이 수시로 되풀이된다.

그러다보니 금리도 신경쓰이고,통화량도 신경쓰이는 이상한 모양이
되고 있다.

물론 이런 정책을 신축적 정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인플레라고 하는 것은 금리를 보아가면서 그때그때 신축적으로
통화공급을 조절한다고 잡을수 있는게 아니다.

앞으로의 경기를 정확하게 예측하는게 중요하다.

통화공급의 효과는 시차를 두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 연준의 경기예측 능력이 새삼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미 버클리 대학의 데이비드 로머 교수는 연준의 경기예측
능력을 민간연구기관과 비교해 보았다.

로머 교수는 1968-91년의 23년동안 연준과 민간연구기관의 경기예측자료를
비교했는데 어느해 가릴것 없이 연준이 일관되게 우월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준의 경기예측결과는 민간 연구기관들에 비해 워낙 월등하게 우월하기
때문에 앞으로 민간 연구기관들의 자료는 아주 무시해도 좋을 정도라고 한다.

연준은 1년에 8번, 향후 12개월 내지 18개월간의 경기에 대한 예측치를
연준 내부의 정책간담회 때에 내놓는다.

다만 연준자료가 실물경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외부에 공개는 하지
않고 토의자료로만 사용한다.

그러나 5년이 지난 후에는 일반에 공개한다.

로머 교수는 이렇게 사후적으로 공개된 자료를 이용했다.

그렇다면 연준은 어떻게 경기를 정확히 예측할수 있는가.

연준은 민간에 비해 자료를 일찍 얻을수 있다든지, 스스로 통화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예컨대 실업이나 인플레 통계의 경우 연준도 정부 발표 전날에야
자료를 얻을수 있다.

연준 스스로 통화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에 유리하다는 비판도 근거가
없다고 로머 교수는 설명한다.

중장기 경기예측시 연준은 3개월후의 경기와 6개월 후의 경기에 대한
예측자료도 함께 만든다.

3~6개월이란 기간은 통화정책의 효과가 인플레에 충분히 반영될수
없는 짧은 기간이다.

그러니 연준이 정보를 획득하는 측면에서는 다른 기관에 비해 유리할
것이 없다.

따라서 연준의 연구원들이 정보를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로머 교수는 말한다.

연준이 경기예측에 관해 이같이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업계나
연구기관들은 연준이 단기금리등 정책변수를 바꿀 때마다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래서 각 기관들은 아예 연준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는 "연준 감시자
(Fed Watcher)"까지 두고 있을 정도다.

연준의 정책하나가 경제에 이 정도의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플레를
잡는데 상당히 유리하다.

금융기관이나 업계에서 투자나 금리결정 등 여러 측면에서 연준의
의도대로 잘 따라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같은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돈을 풀어도 금리가 잘 내려가지
않고, 증시부양책이 나와도 주가가 오르지 않는 우리 현실은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업계나 투자자들이 정부나 중앙은행의 정책을 잘 믿지
않는 것같다.

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기는 커녕 웬만큼 큰 모션을 취하지 않으면
시큰둥해 하는 경우가 많다.

메가톤급이나 빅뱅정도의 대책이 나와야 "어,그래" 하는 정도의 반응이
나온다.

예컨대 부실은행에 한은 특융을 해주는 것은 큰 사건이다.

그러나 특융을 주어도 파격적인 조건이 아니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기아사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도유예협약을 적용해 주는게 이미 큰 특혜에 속한다.

그러나 정부가 적극적으로 알아서 움직이는 선진 시스템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원폭-수폭급 조치로 대응해야 할 것인가.

그래서는 안된다.

조용히 해결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연준과 같이 정부 정책의 시그널링 효과
(signaling effect)를 높여야 한다.

이것이 정부의 권위도 높이고 경제도 살리는 길이다.

시그널링 효과를 높이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다.

정부가 경기예측 능력을 높여 국민들에게 실력을 보여주는 수 밖엔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