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문막에서 빠져 원주 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H콘도가 나타난다.

얼마전 이곳에서 우리 회사의 혁신을 주도하는 부서의 워크숍이 있어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들른 적이 있다.

그런데 나를 먼저 맞이한 것은 입구에 붙어 있는 "묘계동진"이라는
휘호였다.

출전이나 유래한 고사는 알수 없었지만 나름대로 그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팀워크란 진흙탕 속을 함께 뒹구는 데서 나온다"

기업을 경영하는 한 사람으로서 가슴에 와닿는 글이 아닐수 없었다.

현장 경영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최근 기업은 "현장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면서 탁상공론식의 경영을
해봐야 아무런 성과가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최고 경영자들이 현장을 돌아다닌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현장경영이 될수는 없다.

미국 크라이슬러사의 공장장과 부사장을 역임한 리처드 E 도치는 공장장
시절 혼자서 현장을 불시에 방문하곤 했다.

그러나 현장의 작업자들은 서로 휘파람을 불거나 전화를 걸어서 공장장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신호를 해 주었기 때문에 생생한 현장을 목격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현장 경영을 강조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단지 현장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는 생색을 내기 위해서이거나 현장을
감사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생산의 현장 뿐만 아니라 영업의 현장, 서비스의 현장 등 기업활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진정 마음을 터놓고 신뢰를 쌓지 못한다면,
그곳에서 함께 문제를 찾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현장 경영은 한낱 구호에 불과하다.

모든 기업은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고 비전이 있다.

사장에서부터 사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성원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팀워크를 이룰 때 이를 달성할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