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서 미적 표현의 3대요소는 형체 색조 문양이다.

지폐도안도 품위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 3요소가 조화롭게
표현돼야 한다.

지폐도안에서 문양은 인물 건축물 등 주소재인 형체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직간접적으로 장식하거나 감싸는 무늬모양을 말한다.

즉 도안에서 결코 빠지거나 무시될수 없는 조연으로서 균형미 절제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전체적인 예술적 가치와 품위를 높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다른 도안요소와 마찬가지로 위조지폐에 대한 식별력을 제고시키는
기능적 역할도 수행한다.

지폐의 바탕이나 테두리를 장식하는데 사용되는 문양은 채문과 당초문이
대표적이며 각 나라의 전통적인 고유문양도 널리 활용된다.

채문은 물결무늬 호선 원형 등을 다양하게 변형시킨 기하학적 무늬로 지폐
유가증권 등의 위조방지를 위한 바탕그림을 말한다.

당초문은 여러가지 덩굴풀이 얽혀 있는 모양을 그린 무늬로 중후하면서도
화려한 이미지를 표현한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애용되고 있으며 최근엔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변형돼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바탕이나 테두리를 장식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식물이나 자연경관의
소재를 단순화, 상징적인 표현을 하는 무늬도 넓은 의미의 문양에 포함시킬수
있는데 십장생 문양이나 각종 국장및 휘장 등이 여기에 속한다.

지역별로 보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태국 등 동아시아국가들은 당초문
등 전통적인 문양을 주로 사용하고 있으나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회교국가들은 아랍특유의 모자이크 문양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서유럽국가들은 조형성이 강조된 기하학적
문양의 비중이 높다.

한편 지난 96년부터 발행된 미국 달러화의 경우 도안의 테두리에 기존의
당초문 대신 기하학적인 채문을 도입했는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지폐문양을 살펴보면 천원권의 경우 전체적인 도안과 조화를
이루도록 당초문과 기하학적 채문을 테두리 문양으로 사용했다.

또 테두리나 바탕문양은 아니지만 사슴 산 불로초 구름등 동양의 십장생을
독립적인 문양으로 가미했다.

앞면에는 사슴문양을 중심으로 한 십장생문양이 퇴계 이황의 인품을 상징
하고 있으며 뒷면에는 기하학적 채문과 함께 도산서원과 조화를 이루는
산이 그려져 있다.

오천원권의 경우에도 천원권과 마찬가지로 앞면은 당초문과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돼 있으며 율곡 이이의 고고한 자태를 상징하는 학을 중심으로
산 불로초 구름 등의 문양이 곁들여져 있다.

뒷면에는 율곡의 생가인 오죽헌과 산 당초문 채문 등이 조화롭게 장식돼
있다.

만원권 앞면에는 단청과 기하학적 채문을 비롯 빗완자문양 등을 그려넣어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미를 강조하는 한편 도안의 주소재인 세종대왕 초상에
어울리는 용을 중심으로 십장생의 구름 물 바위 등을 첨가했다.

뒷면은 경복궁 경회루를 중심으로 단청 당초문 채문 등을 아름답게 구성하고
있다.

이처럼 지폐는 한 나라의 얼굴 구실을 하는 만큼 단순한 배경문양에도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 국민정서가 담겨지게 된다.

여운선 < 한국은행 발권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