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연 교수와 만난 것은 고려대 교육대학원 강의를 마치고 난 오후 9시40분
께였다.

맥주나 한잔 하자면서 대학로의 카페로 가자고 했다.

저녁 10시쯤 도착한 곳은 대학로의 "끄레아숑"이라는 작은 카페.

행위예술가 임경숙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가끔 이곳을 찾아 젊은이들과 대화하면서 피아노 연주도 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맥주가 나오자 기자는 곽교수에게 먼저 술잔을 권했다.

그러나 곽교수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먼저 술을 따르는 것은 본래
우리나라 습관이 아니고 윗사람이 먼저 아랫사람에게 술을 마셔도 좋다는
의미에서 술을 따라야 한다"며 "술잔에 술이 남아있는데 술을 더 따르는
것도 제사 등 극히 제한적으로만 허용되는 것이고 우리식 습관은 아니다"고
말했다.

70년대말 강의도중 박정희 대통령의 일본 장교시절 이야기를 한게 문제가
돼 수사기관의 추적을 받았는데 용산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차지철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과 고려대 동문의 도움으로 제주도로 피신해 다행히 화를
입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곽교수는 들려줬다.

또 80년대에 대학생들이 민주화운동을 벌일 때 30여곡의 민중가요를
작곡해줬던 일화도 소개했다.

그러던 중 한 대학생이 야학 기금마련을 위해 테이프를 팔려고 카페에
들어왔다.

곽교수는 테이프를 둘러보고는 1만원짜리 지폐를 건네줬다.

그러나 테이프는 사지 않겠다고 말했다.

테이프의 대부분은 트로트와 최신 대중가요의 해적판이었다.

그는 올바른 일을 위해 도움은 줄 수 있지만 이런 테이프를 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따금하게 학생을 혼내면서 돌려보냈다.

잠시후 우연히 카페를 찾은 탱화작가 이인섭씨와 시인 김하윤씨 등과 함께
자리를 같이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곽교수가 피아노앞으로 다가갔다.

어버이은혜, 비목, 그리워, 선구자 등 아름다운 우리가곡을 카페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합창했다.

짧은 시간을 함께 했지만 노교수의 무게가 느껴졌다.

희랍신화에서 아틀라스가 육중한 무게의 우주를 떠받들고 있듯이 그도
우리 고유의 정서를 젊은이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육중한 음악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김남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