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개혁위원회가 퇴직금제도 개선에 관한 그동안의 논의결과를
지난 20일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함으로써 이제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최종결단을 내려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지난 8월21일 헌법재판소가 퇴직금 우선변제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노개위는 몇차례 회의를 열어 의견절충을 시도했지만 노-사-공익
합의의 단일안을 마련하는 데는 실패한 채 이들 3자의 각기 다른 안을 모두
정부측에 넘기는 선에서 손을 털었다.

얼핏 보면 쟁점사항에 대한 노사간의 입장차이는 한달간의 절충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혀 좁혀지지 않은 듯하다.

퇴직금 최우선 변제범위를 둘러싼 이견도 그렇고, 퇴직금 중간정산제와
퇴직금연금가입의 의무화 및 임금보장기금제도 도입을 둘러싼 마찰도
여전하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을 조율한 공익위 안을 중심으로 접근해 볼때 수용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퇴직금 우선변제범위를 정하는 일만 해도 그렇다.

노동계의 8년5개월안과 경영계의 3년안이 맞서고 있지만, 이미 본란에서
지적했듯이 새로운 선진국형 퇴직급여제도의 도입이 불가피한 추세에서
어차피 과도기적으로 시행될 우선변제범위를 놓고 노사가 힘겨루기에
매달린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공익위 안대로 헌재의 판결이후 입사자는 3년, 그 이전 입사자는 8년5개월
로 정하는 것이 누가 봐도 합리적이다.

또 새 노동법에 도입된 퇴직금 중간정산제와 퇴직연금보험제도는 법에
정해진대로 임의조항으로 두는 것이 좋다.

회사마다 규모와 경영여건이 다른데도 획일적으로 이같은 제도들의 시행을
의무화한다는 것은 분명히 무리다.

다만 세제상의 지원등 각종 인센티브를 두어 제도의 시행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임금보장기금제도는 도입을 추진하되 시행시기는 추후에 결정하자는 것이
공익위 안이지만 기업사정과 경제여건을 고려할때 이 역시 서둘러 도입을
의무화할 형편이 아니다.

정부의 퇴직금제도 개선작업과 관련해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점은 이
문제가 엉뚱하게 정치쟁점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퇴직연금 가입 의무화는 민주노총이 총파업결의를 내세워 관철시키려
하는 요구사항중 하나이기 때문에 대통령선거와 맞물려 정치이슈화할 위험성
이 있다.

퇴직금제도 개선논의는 이제 더이상 시간을 끌 여유가 없다.

헌재의 결정이 근로기준법개정 시한을 금년말까지로 못박고 있어 법의
공백상태를 면하려면 이번 정기국회 회기(11월18일)내에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제반절차를 감안해 볼때 늦어도 10월초순까지는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노사 모두가 공익위 안의 합리성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공감하고 있는만큼
정부가 굳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보다는 공익위 안을 토대로 미흡한
점은 보완하는 선에서 퇴직금제도 개선안을 확정하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