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운용하고 있는 제도중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제도의 하나가 바로 그린벨트이다.

지난 71년 지정이래 무려 46차례 이상 규정을 바꾸어 온 것만 봐도 이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계속된 개정에도 불구하고 그린벨트의 "원칙적 중요성"과 현실의
요구나 행위간에는 엄청난 간극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늘 주민불만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래서 지금껏 그린벨트 제도의 손질은 비등하는 주민불만을 잠재우는데
늘 역점을 두어왔던 것이다.

지난 11일 건설교통부가 입법 예고한 그린벨트 완화 내용도 그런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말 당정협의를 통해 마련된 초안을 손질하여 내놓은 입법예고안은
크게 두가지 차별적인 조치를 담고 있다.

첫째는 재산과 관련된 그린벨트 주민들의 불만을 대폭 덜어주려는 점이다.

두번째는 지방자치단체가 그린벨트 내에서 생활시설을 보다 쉽게 개발하도
록 허용하는 점이다.

이 두가지 조치는 그린벨트 주민과 지역 모두가 소망해왔던 것이라는
점에서 우선 환영해 마지 않는다.

그러나 71년 지정이래 가장 파격적이라고 할 정도로 이번 완화 조치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가장 괄목할만한 부분은 지정당시부터 살았던 원거주민의 주택 증.개축을
90평까지 허용하며 이에 대해 동거하는 기혼자녀용 신규주택을 30평까지
지어 이를 분할등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점이다.

그동안 불편하게 살았던 원주민들에게 이러한 증.개축 조치는 반가운
일이지만 해당주민의 실익증진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불투명하다.

중.개축할 자금이 없는 주민들의 경우 이번 조치는 투기꾼에게 돈을 받아
집을 먼저 짓고 소유권을 후에 매도하는 식의 "증.개축 권리 매매"만 부추길
것이다.

기혼자녀의 분가용 주택건축 허용도 위장전입으로 허가를 받아 건축한 뒤
이를 전매하는 방법으로 더 많이 활용될 소지를 갖고 있다.

종합적인 보완조치를 결여한 그린벨트규제 완화는 결국 투자력이 있는
외지인에게만 혜택을 주어왔던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다.

행정구역의 3분의2, 인구의 2분의1 이상이 그린벨트 지역에 있는 시.군.
구에 생활체육시설 의료시설 금융시설 판매시설 등의 생활편익시설을 대폭
허용한 점도 지역주민들의 생활불편해소라는 소박한 취지와는 달리 악용될
여지가 많다.

시설개발의 주체를 공공이 우선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자치시대 지역민원
에 민감한 지방정부는 가뜩이나 불만이 많은 지역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마구잡이식 시설개발을 용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공공이 아닌 경우 "지역주민협의체"의 동의를 얻은 제3자가 개발하도록
하는 조항은 더욱 지역주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개발이 악용될 소지를 안고
있다.

정부는 지정 당시부터 공부상의 나대지로, 6m 도로에 접한 대지에 한해
개발을 허용하겠다는 제한 규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린벨트내 대지의 10%가 이런 식으로 개발될 수 있기 때문에
비계획적 입지가 가져올 난개발은 그린벨트의 새로운 문제로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난개발에 따른 급격한 환경파괴, 인구이입,
상업적 토지이용의 증대 등 "누적된 후유증"이 그린벨트 기능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당초 정부는 입법 예고안을 지난 3월에 발표할 것을 약속하였다.

사실 그 안은 이미 몇개월 전에 "가시화하지 않는 조건"을 달고 언론사에
배포된바 있다.

국민들의 열화같은 반발 때문이라는 것은 이해되지만 이번 완화조치와
관련된 정부의 행보에는 분명 미심쩍은 면이 많았다.

그런 인식의 연장에서 볼때 이번 조치가 최근 정치적 기류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읽게 해준다.

대선후보자들이 하나같이 그린벨트 정책안을 내놓으면서 그들의 정치적
색깔을 차별화하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안은 그래서 "정부여당의 선심공약"
이라는 오해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오비이락으로 해명될 성질의 것이 아닐 듯 싶다.

정권말기에 국가장래에 영향을 줄 대사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은 결코
지혜롭거나 합리적이지 못함을 우리는 지금까지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린벨트 문제 해결의 고민은 정부만이 독점해선 안된다.

도시환경의 마지노선이라는 그린벨트를 둘러싼 문제해결은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대원칙과 이를 구현할 수단간의 관계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장기적
점진적인 방식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그린벨트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두가지의 실행 가능한 방안을 제안하건대,
하나는 대통령(혹은 국무총리)산하에 "그린벨트 제도개선을 위한 국민위원회"
를 신설하자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린벨트 장기종합관리계획"을 마련하는
것이다.

전자가 그린벨트와 관련된 조사, 민원해결, 법개정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
하는 상설조직의 운영을 제안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정책목표나 운용지침,
권역별 차등관리 방법, 특별법 제정의 방향 등을 담아내는 그린벨트 운용의
장기적 표준적 좌표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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