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봉성


새뮤얼슨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라는 명성도 있지만 그의
"경제학"교과서를 통해 우리에게 매우 친근하게 느껴진다.

지난 50년간 국경을 넘어서 애독되어온 "경제학"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정부의 정책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다.

그런데 경제이론에도 시류가 있는 탓인지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새뮤얼슨교수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의 "경제학"이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장하는 케인지언적 사고로
편향되어 있으며,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믿음도 불충분하다는게 비판의
주요 내용이다.

즉 장기적인 경제성장보다는 총수요관리를 통한 단기 경기조절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정부가 공공재 공급을 통해서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는
기능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정부의 역할에 대한 과잉기대를 조성하는데 일조했다는, 그로선
다소 억울한 비난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기아사태와 그에 따른 금융기관의 부실화문제를 두고
정부의 대응자세에 관해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재경원을 중심으로 한 "시장에 맡기자"는 주장에 의하면 단기적으로
고통과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시장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으며, 그같은 시장의 규율을 확립하여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촉진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 개발연대에 자행되었던 정부의 개입과 보호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글로벌 경쟁시대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 즉 경제주체의
자율과 경쟁 그리고 책임이 강조되는 진정한 의미의 시장경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장주의를 고수하더라도 "시장 실패"의 경우에 대해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

이는 최근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에서도 알수 있다.

일부 금융기관의 부실화가 금융제도 전반의 위기로 파급될수 있으므로
한은특융이라는 특단의 지원을 통해서라도 이를 방지코자 한 것이다.

이에 반해 "시장에만 맡겨두지 말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반론도 드세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단순한 이유는 지금까지 정부주도로 잘 해왔는데 갑자기 시장에
맡겨서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이는 글로벌시대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과거처럼 정부에
대한 과잉기대를 지속하거나,아니면 시장의 효율성과 경제복원력에
대한 불신과 막연한 불안감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부개입론에는 보다 설득력있는 근거도 있다.

시장기능이 원활히 작동되기 위해 필요한 각종 제도와 관행이 아직
미비한 현실이 그것이다.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에 수반되어야 할 고용조정이 매우
어렵다거나, 기업출자에 관한 규제가 상존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인수-합병(M&A)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정부의 근원적 책임을 강조하고 제도개선을 위한 적극적
역할을 촉구하는 것은 일리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의 해법을 둘러싼 시장론자와 정부 개입론자의 이같은 논점을
새겨보면 양측의 본질적인 의견차이는 크지 않다고 생각된다.

시장론자도 제도개선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시장규율이 세워지면 제도개선이 촉발될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제도개선과 동시에 시장규율을 세워나갈 것인가, 아니면
제도가 만들어지길 기다려서 규율을 강화할 것인가 정도일 것이다.

우리가 처한 현 상황을 볼때 정부의 시장개입을 지양하고 자율과 책임을
두 기둥으로 하는 새로운 시장규율을 세워나가는 일이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대기업 부도사태와 금융기관 부실화,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엄청난 국민경제적 부담 등을 감안할때 그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하지 않고선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여건을 보면 더이상 제도가 구축되기까지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

시장규율을 최대한 확립해가면서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촉진할
수 있는 여건조성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퇴출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M&A 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부실화된 기업과 금융기관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도태될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제도미비와 문화적 장애 등을 감안할 때 시장을 통한
M&A 가 본격화되기까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따라서 주인이 불분명한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에 있어선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와 같이 가교은행(bridge bank)등을 활용하여 금융기관의 구조
조정을 선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각종 이해집단의 기득권이 형성되어 동맥경화의
경향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본격적인 구조개혁은 위기에 처해서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번 사태로 우리는 이미 상당한 비용(sunk cost)을 치르고 있으며
이젠 이를 헛되이 하지 않도록 하는 지혜를 보일 때라고 생각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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