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후보가 여론회유의 분수령으로 벼르던 추석연휴도 지나 투표일을
두달 앞둔 이제 97대선 출마자 전원의 면모가 드러나면서 대회전의 막이
오른 느낌이다.

선발 3주자에 조순 권영길 이인제 후보가 가세한 다극구도는 헌정경험을
통한 양당제 지향이란 유권자들의 선호와는 반대 현상이어서 과열 혼탁,
그 부작용을 우려하는 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난립 기미가 엿보인 초기만 해도 이를 저지하자는 여론이 팽배했던게
사실이지만 사태가 더욱 꼬이면서 양상은 오히려 바뀌고 있는 감도 든다.

뭣보다 참정권이 보장된 체제아래 출마제한 방법이 없는 이상 후보난립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엔 없다는 현실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 우리에게 긴요한 것은 더 적극적인 사고라 본다.

막무가내 펼쳐지는 다극구도를 마지못해 수용하는 자세가 아니라 넓어진
선택의 폭을 십분활용, 최적 후보의 엄선과 함께 대립을 지양 통일하는 새
전통의 선거문화를 기필코 열어야 한다는 국민적 지혜와 의지가 소중한
것이다.

물론 개별 후보가 어느 시점에서 순수한 자기판단에 의해 사퇴를 하거나
타후보 지지를 선언하는 일은 있을수 있고 환영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다만 매수 협박 등 어떤 불미스런 요인도 여기 개재돼선 안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87년 92년 등 대선을 거듭하면서 점차 양당체제와 멀어져가는 경향을
무조건 질타 매도만 한들 아무 소용도 없다.

그 보다는 그런 흐름의 근본 원인을 추출한 다음 그에 상응한 제도의
보완을 추구하는 것이 현명하다 할 것이다.

특히 냉전체제 종언 이후 각국의 국내정치 양태가 과거 2분법적 대결보다
다양성을 반영해가는 추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추세에서 대통령제든 내각제든 권력 이전과정인 대선 또는 총선이
공통적으로 잦춰야 할 요건은 무엇인가.

첫째가 공정성, 바로 페어플레이(fair play)이다.

돈 모략중상 협박과 같은 해악적 수단들이 배제된, 엄격한 경기규칙이
적용되는 게임이어야 한다.

특히 한국적 현실에서 후보측이 돈을 적게 쓸 뿐만아니라 유권자가
요구하지도, 받지도 않는 일이 핵심중 핵심지사이다.

둘째 어느 나라에도 있는 일이긴 하지만 선거가 지역분열의 도화선이
되어선 안되고 결과적으로 통합의 계기가 돼야 한다.

영남권후보 탈락이 이번 대선의 최대 특징이나 이것이 고질적 지역대립
지양의 기회가 되지 않아선 아무런 의미도, 국운도 없다.

셋째 아무리 참신성을 외치는 후보라도 표를 의식해 원칙을 꺾고 거짓을
일삼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철칙을 유권자들이 세워 이번엔 꼭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정치개혁 특위의 노력여하에 따라선 이런 요건들이 법에 반영되어
후보난립에 불구, 97년 대선결과는 물론 한국 민주주의의 장래는 밝다고
믿는다.

결선투표제 등 향후의 제도보완엔 아직 시간여유가 있으므로 서두를
이유가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