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조상들은 자연의 이변현상을 흉조로 보았다.

지진이 일어나고 여름철에 때아닌 우박이 쏟아지고 바닷물이나 강물의
색깔이 변하고 하늘에 혜성이 나타날 때에는 왕이나 나라에 큰 변화가
일어날 조짐이라고 생각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동대문으로 사슴이 들어오거나 궁에서 부엉이가 우는
따위의 동물 이변도 상서롭지 못한 전조로 기록해 놓았다.

"삼국사기"에는 총 9백36회의 천재지변 기록이 나온다.

천재가 6백4회로 3백32회인 지변의 2배 가까이 된다.

천변은 혜성 오성 유성 일식 등의 출현이고 지변은 지진 가뭄 홍수 벼락
바람 여름철강설 적조 녹조 등의 발생이었다.

여기에서 혜성은 왕의 사망이나 전쟁등의 예고로, 오성과 유성은
반란이나 죽음등의 예시로,그리고 일식은 가뭄이나 전쟁 또는 왕이나
고관의 죽음등의 예시로 받아들였다.

지진 역시 가뭄 홍수 등의 재난이나 전쟁과 죽음의 전조로 생각했다.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천재지변을 이렇게 생각해온 바탕은 음양오행사상
이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요즈음에도 한국인들의 의식 저변에는
자연이변을 어떤 전조로 생각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의 균형이 깨지면서 생겨나는 변화로
받아들이는 과학적 사고를 갖게 되었다.

최근 남해안에서 발생한 적조가 점차 동해안으로 확산되면서 양식어장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적조는 바닷물에 강한 햇볕이 내리쬐어 표면의 수온이 올라가고 폭우로
인해 담수가 바다에 대량으로 흘러들어가 영양염류가 크게 늘어나거나
무풍상태가 계속되어 바닷물이 섞여지지 않을 때 발생한다.

그때 바닷속의 플랑크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폐사 분해되면서 해중
산소를 소모하게 되고 그에 따라 어패류는 아가미가 막히거나 호흡곤란에
빠져 죽게 된다.

이번의 적조는 때아닌 이상고온의 계속이 가져다준 자연재해다.

적조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져 있지만 그것을 극복할수 있는 방도는
아직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을 경외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