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때마다 등장하는 선심성 정책중에 그린벨트(개발 제한구역)
규제완화만큼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도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건설교통부는 지난 11일 대폭적인 그린벨트내 시설물 규제완화안을
입법예고했다.

차기 대통령선거를 3개월 남짓 남겨놓은 시점에서 새삼 일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이번 대책은 시작부터가 정치권의 민원해결 차원이었던 만큼 정치권의
요구를 정부가 대폭 수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엄격한 기준이나 원칙에 의한 조치가 아니라 민원해결 차원에
초점을 맞췄다고 할수 있다.

물론 이번 조치는 지난해 12월 건교부가 발표한 원안보다는 다소
까다로운 규정을 많이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그린벨트 제도개선 방안은 그동안 40여 차례의 덧붙이기식
완화조치와는 달리 그린벨트 26년사상 가장 파격적이며, 따라서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예컨대 90평까지 확대된 주택의 증축허용 범위도 생활불편해소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볼수 있으며, 그중 30평은 자녀의 분가용으로 분할등기까지
허용키로 한 것은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길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더욱이 필지를 합한 대지에 대해서는 다세대주택 형태의 대형주택 건축을
허용함으로써 그린벨트 안에 호화 빌라까지 등장할 소지를 제공했다는 것도
문제다.

또 그린벨트 훼손의 주범으로 지적돼온 공공시설 점유율을 크게 높이고
철거건물의 이축제한을 완화한데다 그린벨트 안에 각종 생활편의시설 설치를
허용함으로써 대형건축을 노린 투기행위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공공시설이나 근린 편의시설의 건축허용이 불러올 환경파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들 시설이 제기능을 발휘하려면 진입로 주차장 폐기물처리장 휴식시설
등의 부대시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추가 훼손이 불가피하게 된다.

정부는 이같은 부작용을 예상해 복잡한 제한조건을 두어 무분별한
훼손을 막겠다고 하지만 단속 점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사후대책의 엄정집행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린벨트를 보는 시각은 집단에 따라 다양할 수 밖에 없다.

규제완화조치가 나올때마다 환경론자들은 눈을 부라기게 마련이고
아무리 규제가 대폭 완화돼도 주민들은 미흡하다는 반응이다.

거주주민 국민 당국자 환경론자들을 동시에 만족시킬만한 해결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단편적인 미봉책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물론 그린벨트 제도는 공익을 내세워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해온
것이 사실이다.

억울한 것으로 따지만 공원용지 등이 그린벨트보다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제도들은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산"이라는 국민적
합의에 바탕한 것이다.

다소의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국민 모두가 이같은 합의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 옳다.

정부의 그린벨트정책이 최근 몇년사이에 "보전"보다는 "개발허용"쪽으로
알게 모르게 바뀌고 있는 인상이 짙지만 그린벨트 설치목적에 부합되는
보전 위주의 관리방안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