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대 사회학과 졸업반인 김은주(22)씨는 올해 입사 시험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시즌이 다가오면 원서는 내겠지만 진짜 도전은 내년 상반기로 미뤘다.

대신 컴퓨터학원에 등록했다.

반년간 파묻혀 프로그래머 과정을 마치기로 했다.

겨울엔 동구지역에 두달간 배낭여행도 다녀올 작정이다.

부모님께도 반년 동안의 "향토 장학금" 지원 약속을 받아두었다.

종합상사에 입사해 세계를 누비는 "맹렬 여성"을 꿈꿔온 김씨가 날개를
접은 건 지난달.

"경험 삼아" 원서를 낸 중소기업의 서류전형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고 난
뒤였다.

학벌도 빠지지 않고 성적도 우수했는데도 면접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것이다.

"결혼은 선택, 취업은 필수"라는 시체말에 어울리게 여학생들의 직업관이
변해가면서 김씨와 같은 취업재수생이 늘고 있다.

취업시즌에 한 두 번 들어가고 싶은 회사에 원서를 냈다가 안되면 말았던
예전과는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올해만 해도 취업에 다시 도전하는 여학생이 6만5천명이나 된다.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학4학년은 대입시험을 앞둔 고3학생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된다.

학교수업은 물론 강의가 없는 날이나 저녁에는 "과외"까지 받기 때문이다.

이화여대가 지난해 "이화인증원"을 개설하는 등 각 대학이 여학생들을
위한 전문 강좌를 마련하고 있는 것은 고3시절의 보충수업에 다름 아닌
것이다.

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되고 있는 이런 취업준비생들의 열기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용어가 바로 "더블 스쿨(double school)족".

정규학교 수업 이외에 특기나 장기를 익혀 수료증이나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을 일컫는다.

컴퓨터 방송 디자인 메이크업 머천다이저 광고 외화번역 등 전문분야를
강습하는 학원에는 학원출입과는 어울리지 않은 세련된 여대생들이 발디딜
틈 없이 모이고 있다.

아예 고시나 자격증 시험으로 방향을 돌리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행정 외무 등 각종 고시, 변리사 신용분석가 선물거래중개사 외환딜러 등의
자격을 따려는 사람들이다.

개중에는 혹 특이한 경력으로 쓰임새가 있을 것 같아 부동산중개사 시험에
응시하는 여학생도 있을 정도다.

이같은 여대생들의 취업열기는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고급인력의 활용이라는 점에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상무는 "국내 인력구조의 문제는 여성인력의
활용률이 저조한데 있다"며 "단기간에 인력구조를 바꾸기 어려운 만큼 여자
들의 전문직 진출 노력이 여성고용 확대의 첩경"이라고 말했다.

< 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