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부터 위성과외가 시작되면서 신문이나 TV에 종종 등장하는 교실안
수업풍경은 이른바 교단정보화가 이룩된 21세기 우리나라 초.중.고교의
교실모습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이채롭다.

여느때 같으면 선생님과 칠판에 쏠려 있어야 할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대형 TV화면에 집중돼 있고 교단에 서 있어야 할 선생님은 교실 한구석의
빈 의자에 턱을 괴고 앉아 무료함을 달래고 있는 모습이다.

교육부가 첨단 영상교육시대를 열기위해 추진중인 "교단선진화"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교구로 대접받아온 칠판이 사라지고
그 빈 자리를 첨단 화상시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교육부의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올해부터 99년까지 3년동안 매년
2천40억원씩 총 6천1백20억원을 투입, 전국 1만1천개 초.중.고교
(20만4천학급)에 칠판을 없애는 대신 펜티엄 컴퓨터와 프로젝션TV
대형모니터 일반TV 등 첨단 영상기기를 공급한다는 것.

이 바람에 신이 난 것은 화상시설을 생산하는 전자업체들이다.

업계는 교실시장규모가 학교 자체 구매까지 합할 경우 멀지않아 약
1조원, 장기적으로는 3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무리 거역할 수 없는 정보화의 물결이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교실의
주인역할을 해온 칠판의 퇴장에 아쉬움을 느낄 사람도 많을 것이다.

칠판은 단순한 수업구도가 아니라 그리운 선생님의 체취와 자신들의
초롱초롱 빛나던 눈망울의 잔영이 각인돼 있는 각별한 공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칠판앞에 불려나가 벌을 서거나 칠판에 적힌 문제에 멋진 답을 써넣어
칭찬듣던 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칠판의 퇴장으로 학창의 추억을
함께 잃어버리는 것 같은 허전함을 첨단 화상시설로 위로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칠판의 무게가 있어 그나마 선생님의 권위 유지에 보탬이 되고
청소년들의 경박성을 눌러주던 교실의 분위기가 첨단 영상기기의 등장으로
오락실이나 비디오방 같은 들뜨기 쉬운 분위기로 바뀌지 않을까 지레
걱정이 들기도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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