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사 - LA타임스 신디케이트 독점전재 ]

미국의 유력 신문인 위싱턴 포스트는 지난 7월 가장 모범적인 경제모델로
네덜란드 경제를 꼽았다.

실업과 사회복지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높은 사회복지 수준을 유지하면서 실업률을 낮추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는 요즘 잘 나간다는 미국 경제에서도 엿볼 수 있다.

미국 경제는 7년째 호황을 누리면서 실업률을 크게 낮췄지만 사회복지의
축소와 무자비한 대량해고라는 어두운 이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네덜란드 경제의 성과가 더욱 돋보인다.

이에따라 세계 각국의 정치.경제.언론인들이 네덜란드 경제의 비결을 캐기
위해 몰려가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하고 있다.

82년부터 94년까지 12년동안 네덜란드 경제를 진두지휘한 루드 루버스 전
총리는 최근 글로벌 포인트에 기고한 글에서 네덜란드의 성공비결을
소개했다.

<정리 = 조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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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선진8개국(G8)정상회담에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미국
경제를 마음껏 자랑했다.

실제 미국 경제는 저실업률-저물가 속에 7년째 안정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현재의 경제이론으로는 미국의 호황을 설명할 길이 없으니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높은 실업률과 낮은 경제성장으로 고민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과는 대조적
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유럽 정상들에게 미국 경제를 모델로 세계화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한다고 큰소리 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미국경제에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경제는 무자비한 대량해고를 통해 이룩됐다.

이와 함께 사회보장제도가 크게 희생되는 대가를 치렀다.

과연 클린턴 대통령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식 경제모델이 유일한
대안인가, 유럽처럼 높은 사회복지 수준을 고집하면 필연적으로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는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해법은 네덜란드 경제의 성공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네덜란드는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실업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실제 유럽연합 국가들의 평균실업률은 11%대를 넘지만 네덜란드의 실업률은
6%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성공비결은 뭘까.

우선 네덜란드의 성공은 70년대에 만연한 네덜란드 병의 산물이라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지난 60년대 네덜란드의 사회복지는 생산성향상에 기인했다.

이는 사회간접자본 확충, 높은 교육열, 충실한 직업훈련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70년대에는 그렇지 못했다.

천연가스 발견 등으로 국가수입이 크게 늘어나자 사회복지 수준을 지나치게
높이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급증하는 사회복지비 유지를 위해 정부지출이 늘어났다.

급기야 사회복지비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0%에 이르렀다.

임금도 빠른 속도로 인상됐다.

노동자들마저 이런 임금인상 추세가 계속되면 기계가 노동자를 대체하는
비극이 발생할지 모른다고 우려할 정도였다.

기업들의 허리가 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실업률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82년도까지 실업률이 연간 2.5%씩 늘어났다.

구조적인 실업률 증가였다.

이때 내가 이끄는 새 정부가 네덜란드 병을 치료하고 사회균형을 회복하라
는 국민적 여망을 안고 출범했다.

모든 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고용창출이었다.

당연히 투자지향 정책에서 고용창출 정책으로 방향이 급선회됐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시작했다.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으로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는 케인스학파의
이론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각종 정부보조금의 축소, 공무원의 임금동결, 공무원 신규채용의
억제 등 조치가 취해졌다.

정부는 이와 함께 재계와 노동계에 임금동결 고용확대를 요구했다.

그 결과 경영자와 노동조합간 바세너협약이 체결됐다.

협상이 이뤄진 헤이그 근교의 마을 이름을 딴 이 협약의 골자는 근로자의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대신 경영자들은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따라 정규 노동자의 임시직 전향, 노동시간 감축, 조기퇴직제도 등이
도입됐다.

이 일련의 조치들로 인해 더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세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네사람이 나눠서 하게 된 것이다.

근무시간은 주당 4일, 총 근무시간은 38시간을 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남는 시간을 어린이 양육, 여가생활 등 다른 활동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

"고용창출을 위한 임금억제"

이것이 바로 네덜란드 경제기적의 시작이었다.

이같은 정책이 시행되면서 노사협상에서 산업별 협상보다는 직장별 협상이
자연스럽게 정착됐다.

이를 통해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즉 노동시간 및 일자리 배분 등에 신축성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떤 이들은 네덜란드 노동시장을 파격에 가까운 신축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물론 이같은 정책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행 초기에는 일자리를 공유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정부와 노동조합간 마찰도 심했다.

특히 공무원 임금을 동결할 때는 심각한 저항에 부딪치기도 했다.

그러나 새 정책의 효과가 가시화되면서 마찰이 줄어들었다.

성과를 바탕으로 당시 정권은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해 재집권할 수
있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정부는 다음 단계의 조치를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사회복지 인센티브시스템을 뜯어고친 것이다.

기업과 개인에게 더 많은 위험을 부과하는 대신 정부는 적은 위험부담을
지는 것이 골자였다.

새로운 복지 시스템하에서 근로자들은 직업을 잃었을 경우, 임금이 낮다며
회사를 그만둔 경우, 일이 마음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한 경우에 더이상 정부
로부터 수혜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한편 그동안 사회복지 부담금으로 허리가 휘던 기업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장애인이나 고령노동자를 성급하게 해고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정부가 그 비용을 대신 부담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같은 저임금, 복지제도개편, 임금인상억제, 고용확대
정책 등이 완전하게 뿌리내리게 됐다.

이제 경영자 노동자 등 모든 사회구성원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경영자와 노동조합 간에 믿음이 생긴데 따른 것이다.

노동자도 경영자도 이익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 이같은 신뢰는 주요 정당간 의견차이가 크게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현재의 빔 코크 총리는 사회민주당원이며 한때 무역노조의 지도자였다.

하지만 보수당과 협력해 과거 집권당의 정책들을 대부분 이어가고 있다.

여당과 야당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세계화 시대다.

비록 네덜란드식 경제모델이 세계화 움직임이 본격화되기 이전에 체계를
갖춘 것이지만 여전히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국경이 허물어지면서 어느 나라든 정책의 유연성이 절대로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1인당 GNP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있다.

높은 삶의 질, 공정성, 지속가능한 사회 등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경제는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국민당 노동
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 약력 ]

<>1939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출생
<>로테르담 대학 경제학과 졸업
<>경제장관, 국회의장 역임
<>총리 역임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