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그룹의 화의신청은 여러가지로 주목할만 하다.

대기업그룹으로는 첫 화의신청인데다 진로와 비슷한 형편인 대기업그룹들도
적지않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제도적으로 법정관리와 화의의 차이점은 여러가지다.

우선 법정관리는 경영권이 법정관리인에게 넘어가는 반면 화의는 기존
경영권자가 계속 경영권을 행사하게된다는 점이 다르다.

또 담보권을 갖고있는 채권자의 경우 화의개시결정이후에도 담보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법정관리와는 큰 차이가 있다.

최근들어 화의신청이 크게 늘고있는 것은 잘만하면 이 제도가 채권.채무자
양쪽 모두에게 법정관리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채무자인 기업은 경영권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채권자인 은행은
채무자와의 화의조건 협상을 통해 채권동결기간이나 금리를 법정관리때보다
유리하게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할 만 하다.

그러나 이 제도는 화의개시인가 이후에도 담보권자가 공장을 경매에
붙일수도 있는등 채권동결의 불확실성이 없지 않다는 점에서 복잡한
일면이 있다.

진로그룹의 화의조건으로 <>담보권없는 대여금 채권자에게는 2년거치
5년분할 상환에 이자율 연6% <>담보채권자에게는 같은 기간에 연9%를
제시한것도 언제든지 담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채권자를 우대해야하는
이 제도의 특색이 감안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파산할 경우 단한푼도 건지기 어려운게 무담보채권자이고 보면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같은 "차등"이 현실적으로 화의개시결정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기간과 진통을 부르는 요인이 될게 명확한데다 그 파장이
금융시장에 즉각즉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에서 특히 관심사다.

화의는 담보권자 전원과 전체 채권자의 4분의3(금액기준)이상 동의가
전제돼야한다.

주거래은행인 상업은행등 담보채권자들의 동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2금융권의 거부 반응이 거셀 경우 문제가 있게 마련이다.

진로등 재무구조가 나쁜 대기업그룹의 경우 거의 하나같이 종금 리스
파이낸스 할부금융등 제2금융권의 무담보채권비중이 매우 높다.

조달금리가 은행보다 높게 마련인 이들 금융기관이 담보채권자인
은행보다 훨씬 불리한 차등금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다.

이번 진로사례는 바로 그런 점에서 부실대기업에도 화의제도가 현실적으로
유용할수 있는지를 가늠할수 있게 하는 측면이 있다.

진로그룹은 화의신청과 동시에 이미 부도 처리됐지만 화의신청에 대한
관련 금융기관간 의견조율도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상황은
유동적일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걱정스럽기만 한 국면이다.

그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경우 금융시장 불안이 가중될 수 밖에 없을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화의신청과 부도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진로그룹 정상화방안을 신속히
결정하는 것이 정말 시급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