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은 학원들이 모여있는 곳이라서 신촌 대학로 압구정동과는 다른
체취가 느껴진다.

분식집 만화방 비디오방 오락실 중저가의류점 등 10대만의 독특한
소비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노량진을 거쳐간 사람들은 "노량진만큼 놀기 좋은 곳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노량진의 모습이 요즘들어 크게 바뀌고 있다.

저녁녁부터 정진학원앞 거리에 포장마차 행렬이 줄지어 늘어서는 것은
올해부터 생겨난 진풍경이다.

낮에 떡볶기와 꼬치류를 파는 포장마차가 철수하고 나면 술까지 파는
포장마차가 차도를 점령하고 있다.

전화방과 휴게방 등 신종 방문화도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주택가였던 곳까지 이들 점포들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전에 없던 풍경이 이렇듯 갑자기 생겨난 이유는 뭘까.

"최근 재수생수가 격감하면서 취업과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20대 중후반이
새로운 노량진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까르딘 청소년사랑터의 한 수녀는
말한다.

실제로 노량진에는 7.9급 행정고시학원, 정보처리학원, 건축토목학원,
요리학원 등 각종 취업준비학원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이들 취업준비생들이 공부하는 독서실도 크게 늘고 있다.

독서실은 간이 고시원 스타일로 꾸며져 있어 공부는 물론 잠도 잘수 있다.

취업준비생들에게 안성마춤의 장소다.

독서실이 늘어날수록 스트레스를 풀수 있는 유흥장소도 함께 증가하기 마련.

그래서 포장마차와 각종 향락적인 문화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얘기다.

노량진은 낮에는 10대 중반의 중고교생들이 활보하는 학원가, 밤에는 20대
중반이후가 즐기는 유흥가로 양면의 얼굴을 갖게 된 것이다.

이 때문일까.

예전에 노량진에서 재수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다시 노량진을 찾으면 변화된
모습에 놀랄 정도라고 한다.

학원수업이 끝나면 떡볶기와 함께 재잘대고 공부가 힘들때면 인근 사육신묘
로 머리를 식히러 가던 노량진의 청소년들이 이제 향락적 소비문화의
틈바구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노량진의 모습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 강남 일대 유흥가에 비해서는
때묻지 않은 순수함도 간직하고 있다.

단란주점 룸싸롱은 아직 노량진에 까진 그 마수를 뻗치지 않고 있고
옷가게도 베네통 마리떼프랑소와저버 등의 상설할인점과 중저가 의류점들이
대부분이다.

값비싼 갈비집과 대형음식점보다 분식집과 롯데리아 파파이스 등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서 있다.

노량진지역 청소년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상담소도 2곳이 있어 청소년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노량진이 이같은 젊고 활기차고 순수한 모습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은
노량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책무가 아닐까.

<장규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