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교보빌딩옆으로 난 먹자골목 2층.

여러명의 외국인이 일렬로 늘어선 PC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느라
여념이 없다.

간간이 한국의 대학생도 눈에 띈다.

벽에는 원색의 페인트로 칠해진 큼지막한 알파벳이나 영어단어들이
장식물을 대신하고 있다.

장식물이라고 친다면 고작 메모판겸 게시판이 걸려 있을뿐.

거기에는 약속 날짜며 장소.시간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한켠에는 다른 외국인들이 주스나 맥주 한잔씩을 사이에 두고 정담을
나누고 있다.

대형TV를 통해 흐르는 비트 강한 팝송을 빼고는 차분한 분위기가 오히려
처음 들어선 이를 압도한다.

술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사이버카페 "Net"의 풍경이다.

윤상건(29) 사장이 Net의 문을 연 것은 지난 95년 가을쯤.

대학졸업후 음악이 좋아 레코드점에서 일도 해봤고 프리랜서로 방송사
등에 음악관련 글도 실어보았다.

그러던중 아래층에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아버지께서 위층 사무실자리가
난 것을 눈여겨 보고 사업을 해보라고 권유하셨다.

부모님께서 도와주신다니 내친김에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당장 뭘 할까 떠오르는게 없었다.

이것저것 궁리하다 어학연수에다 배낭여행을 한답시고 미국 캐나다 유럽
등을 6개월간 돌아다니면서 잠깐씩 쉬어갔던 카페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옳다구나 하고 카페로 결정했는데 어떻게 남다르게 꾸밀까가 또
고민이었다.

여러날 머리를 싸매다가 당시 PC통신과 인터넷에 한창 관심을 가지고
있던터라 인터넷카페로 최종 낙찰을 보았다.

투자비용도 저렴하고 승부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 앞서 홍익대앞에 네스케이프라는 비슷한 카페가 들어섰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됐다.

보증금 시설비까지 합한 총투자비가 5천만원.

PC는 5대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10여대.

처음에는 용산전자상가에서 조립품을 구입해 이용했으나 이후에는 직접
조립, 설치했다.

그만큼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인터넷전용선은 PC통신업체인 아이네트에서 40~50% 할인된 사용료를 주고
끌어다 댔다.

인터넷사용료는 30분 단위로 매긴다.

처음 30분은 1천원.

30분이 넘어가면 추가로 1천5백원씩 받는다.

회원제도 도입했다.

한달에 2만5천원만 내면 매일 무료로 30분씩 인터넷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현재 회원은 1백50명정도.

회원에 한해 30분이 넘어서면 추가로 5백원씩, 음료수를 곁들이면 2시간을
이용할 수 있다.

한달 수입은 1천만~1천2백만원.

인터넷여행객은 주로 외국인관광객이나 한국에 체류중인 외국인들.

고객중 80%가 이들이다.

개점초에는 한두명의 외국인이 찾더니 두달이 지나자 외국인들로 북적댔다.

이젠 외국인여행가이드지에 실릴 정도로 유명해졌다.

외국인들의 이야기상대도 해주는 윤사장은 "사업수완이라는게 따로 있나요"
라며 "손님들을 마음편하게 해주는 게 비결"이라고 싱거울 정도의 답을
던졌다.

손님이 들어와도 불쑥 메뉴판부터 들이미는게 아니라는 것.

책도 읽고 정보도 교환하고 친구도 사귀는 만남의 장소, 지역사회의
사랑방이 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게 우선이라고 한다.

서울시내만 해도 20여개의 사이버카페가 생겼고 대기업들도 체인점형태로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어 윤사장은 어느날 갑자기 새로운 사업구상을 할지도
모르겠으나 당분간은 "Net"에 매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 김홍열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