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경제정책중에서 소위 재벌로 불리는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규제시책은 무척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과거의 정부주도형 경제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경제력집중의 병폐를 예방하고 시정하기 위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요즈음과 같이 세계경제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고 개방화
세계화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이같은 시책이 그대로 유지돼야
할 것인지는 재검토 해볼 필요가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표적 경제력집중억제 시책중의 하나인 대규모기업
집단 지정제도를 폐지토록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시대상황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재계의 주장은 대기업집단에 대해 갖가지 규제가 가해지는 이 제도가
다국적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로 작용해 국가경쟁력
약화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시장에서의 경제력집중을 우려해 대기업들에 대해 신규사업진출이나
출자 기업결합 등에 대해 갖가지 규제가 주어지는 것은 국제경쟁에 나서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히려 세계 각국의 기업들은 강자들끼리 연합하고 합치면서 세계시장
지배를 노리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추세다.

더구나 개방화시대에는 국내시장에서의 시장지배적 남용행위여지는
해외경쟁의 도입으로 인해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대로 갈경우 세계시장에서 거대한 다국적기업과 맞설수 있는 기업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또한 국내 경제환경의 변화를 보아도 기존의 대기업규제정책을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은 얼마든지 있다.

현재 경쟁적 시장구조로의 전환을 위한 제도개선이 광범하게 이뤄지고
있고 특히 자율을 근간으로 하는 금융개혁, 투명경영을 위한 제도보완,
내부거래규제의 강화 등 광범한 제도개선이 추진되고 있다.

모든 기업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그러한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될 경우
그것만으로도 경제력집중의 폐해는 방지될수 있다고 본다.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의 형식논리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출자나 지급보증, 사업다각화, 경영조직형태 등은 그야말로 기업고유의
의사결정 영역에 속한다.

이를 정부가 제한하는 것은 경영효율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규제라
볼수있다.

정부가 21세기 정책과제로 내걸고 있는 "기업지배구조의 선진화"만 해도
어떤 것이 선진화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미국이나 일본을 흉내내면 선진이고,한국문화에 바탕을 둔 조직은
무조건 후진이란 말인지 알수 없다.

물론 우리는 현실경제에서 나타나고 있는 재벌의 경제력집중문제를
간과하거나 방치해야 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시대상황과 여건변화에 맞도록 제도나 정책수단을 달리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개방화 세계화로 경쟁과 도산의 압력이 충분하고 금융의 정상화와 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된다면 직접적으로 기업의 규모와 투자 등을 제한할 것이
아니라 시장경쟁의 힘에 규제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