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 대통령 후보인 이회창씨의 아들들이 병역의무를 치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계에 음산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것은 이씨의 정치적 행로에 거의 치명적 상처를 주었고, 그를 지지해온
유권자들을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고 있다.

참으로 아타깝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논의의 초점이 이씨의 도덕성에 맞춰진 채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병역을 부정하게 피하는 사람들을 줄이고 병역을 보다 공평하게 하는 길에
관한 논의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후보들이 정책대결을 벌여야 한다고 모두 얘기하는 터라, 적잖이 부자연
스럽고 아쉬운 일이다.

물론 그런 사정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여당은 한시라도 빨리 그 문제를 시민들의 눈길밖으로 밀어내고 싶을
것이다.

그 일과 관련된 얘기는, 나오면 나올수록 손해라는 생각일 터이다.

야당들은 논의의 초점이 이씨의 도덕성에서 제도적 문제로 옮겨가는 것을
바라지 않을 터이다.

그래도 큰 문제들을 안은 병역제도를 개선할 기회를 그냥 보내기는 너무
아깝다.

징병제의 본질적 문제는 그것이 시장기능을 전적으로 배제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시민들로부터 병역이라는 용역을 강제로 가져가고 값은 제대로
치르지 않는다.

사정이 그러하니, 크고 작은 문제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자연히 가장 좋고 근본적인 개선책은 병역에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것이다.

정부와 시민들 사이에 자발적 거래로 병역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지원병
제를 채택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자유주의 원칙에 맞을뿐 아니라, "파레토 개선"을 통해 사회의
복지를 늘린다.

미국이 지원병제로 바꾼 뒤로, 특히 "걸프전"에서 지원병들로 이루어진
군대들의 우수성이 증명된 뒤로, 지원병제는 빠르게 확산되었다.

지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든 유럽국가들은 모두 지원병제를 전적
으로나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실전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나라에서도 지원병제는 국방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대상자를 굳이 우리 시민들로 한정할 까닭도 없다.

실은 용병제는 지원병제를 적절히 보완할 수 있다.

구르카족 병사들처럼 임금이 싸고, 군인으로서의 자질이 우수한 개발도상국
병사들과 첨단 무기체계를 다루는 선진국의 기술요원들은 국방력을 효율적
으로 높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런 근본적 방안은 이내 채택될 수 없다.

당장 재원이 문제다.

호전적 북한군과 맞섰다는 사실은 실제적 어려움을 크게 한다.

그러나 시장원칙을 도입하여 병역을 보다 효율적이고 공평하게 만드는
길은 여럿이 있다.

가장 급한 것은 병역에 대한 값을 가능한 한 제대로 쳐주어서, 병역의
비용과 가격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이것은 두 단계로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첫단계는 복무할 때의 급여를 지금의 너무 낮은 수준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병사들이 제대한 뒤에 세금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조치에 상응해서, 병역의 전부나 일부를 면제받는 사람들은 그런
혜택에 대해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힘들고 위험하므로 병역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용역이다.

병역을 면제받았지만 다른 사회활동으로 수입이 있는 사람들은 그 값을
내도록 하는 것이 사회정의를 위해서도 긴요하다.

병역을 제공한 사람들에게 제값을 치러주고 면제받은 사람들로부터 그
값을 받는 조치는 지금 징집과 면제 사이에 존재하는 너무 큰 격차를 상당히
줄일 것이다.

그래서 도덕적 위해(moral hazard)를 줄여서, 병역에 관한 부정을 줄일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부패가 아주 심한 까닭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모든 제도
들이 너무 높은 수준의 도덕적 위해를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그런 조치는 지원병제로의 이행을 도울 것이다.

자기 몸을 훼손해서라도 군대에 가지 않은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가리키듯, 군대는 아주 힘들고 위험하고 구속적인 직업이다.

그래서 시장에 맡기면, 병영을 병사들로 채우는 월급은 적어도 2백만원은
될 것이다.

수많은 병역면제자들로부터 그런 돈을 거둔다면 지원병제로의 부분적
이행은 훨씬 수월할 것이다.

지금 병역의 개선책들로 나오는 것들은 주로 복무기간을 단축하고 현역
군의 규모를 줄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 조치들도 물론 긴요하지만 그것들만으론 너무 부족하다.

다른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병역에서도 개혁의 요체는 시장원리의
도입이다.

위에서 얘기한대로 이회창씨나 그를 돕는 정치인들은 다른 큰 사건들이
일어나서 그의 아들들의 병역에 쏠린 시민들의 눈길이 뜸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낫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병역은 대한민국 남자들의 대부분이 아주 소중한 정신적 자산으로 여기는
일이고 모든 사람들이 늘 부딪치는 문제다.

쉽게 잊혀질 일이 아니다.

이씨에게 앉은 도덕적 때도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씨로선 차라리 병역개선방안을 과감하게 들고나오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 길은 적어도 논의의 초점을 그의 도덕성의 문제에서 제도적 문제로
옮기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