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가치와 도덕의 실종, 물질 만능주의, 경제 시스템의
와해, 교육의 실패, 가정의 퇴락과 청소년의 방황, 안보의 위협과 다가오는
통일에 대한 무방비 등 실로 태산과 같은 문제를 안고 신음하고 있다.

우리가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의 총체성과 심각성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지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리더십에 대한 기대 또한 커지고 있다.

요즘 신문 방송 도서 등 각종 매체를 통해 표출되는 리더십에의 관심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현재의 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나가 이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수 있는 리더십의 모형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오랜 세월동안 숱한 위기를 극복한 조직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찾아질수 있을 것이다.

역사속에서 발견되는 위기극복의 요체를 알아 보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리더십의 요건을 규명할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더십의 정의는 "리더십을 연구하는 사람 수 만큼이나 많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다양하다.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리더십의 실체는 타인의 사고와 행동에 주는
영향력으로 정의할수 있다고 본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조직은 가톨릭 교회로 생각된다.

교회는 "순교자의 피위에 세워졌다"는 말이 시사하듯이 2천년의 장구한
풍상을 이겨온 이 조직은 수많은 순교자들의 희생이 그 터전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희생적 행위는 동시대및 후대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앞서 말한 대로 리더십을 타인의 사고와 행동에 주는 영향력이라 한다면
리더십은 직위의 고하에 상관없이 자기가 속한 조직의 안위와 번영을 위해
희생을 바친 양에 비례하여 결정된다고 볼수 있다.

리더십과 희생이 상관관계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 교수의 지적대로 인간은
합리적이기는 하나 그 능력이 제한되어 있어 인간이 만드는 조직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어느정도의 불완전성을 피할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완전성은 때로 업무분장의 불평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급여나
복지의 불공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는 모호한 책임과 권한 설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의 불완전성이 지속적으로 극복될 때라야 한 조직은
지속적으로 생존할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구성원들 대부분은 희생적이기 보다는 이기적이다.

따라서 이들은 조직의 불완전성을 흡수하기 보다는 배척한다.

그 배척은 작게는 비협조나 불평으로,크게는 저항이나 투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무관심 무사안일 복지부동 무기력증 등의 징후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들의 확산과 지속은 곧바로 조직의 퇴락과 붕괴로 이어질수
있다.

자기중심적 태도는 조직의 위기나 큰 환경적 변혁을 겪을때 더욱 고조되는
경향이 있다.

위기에 봉착해 있을 때야 말로 더욱 많은 구성원의 참여와 희생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사회는 구성원들로부터의 자발적인 참여와 크고 작은 희생을
얻어낼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리더십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구성원들은 어떤 지도자에게 자기의 이러한 이기심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발적 희생을 감수할 의욕을 낼 것인가.

심리학 사회학 생물학 인류학에 걸친 방대한 연구결과를 종합할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도자가 자기희생의 모범을 보일 때라는 것이 증명돼 왔다.

지도자는 위기때는 목숨을 던지는 희생으로,평시에는 겸양.근검.절제의
지속적 실천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도자는 세분야,즉 업무 소득분배 실력행사(주어진 특권이나 권한의
사용 또는 재력 등의 행사)의 과정을 통해 자기희생의 모범을 보일수 있다.

업무상으로는 어렵고 빛이 안나는 일을 자청하거나 큰 재난의 책임을 홀로
감수함으로써, 소득분배 측면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질 정당한 대가나 명예를
필요에 따라 부분적-전적으로 사양함으로써, 실력행사 측면에서는 특권의
향유와 모든 자원의 사용에서 자제와 겸양의 미덕을 보임으로써 자기희생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희생적 지도자는 그렇지 못한 지도자에 비하여 조직원들로부터 월등히
높은 카리스마적 매력과 정통성을 부여받게 될뿐 아니라 조직원들의
참여의지와 자기희생적 의지도 월등하게 커진다는 사실이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져 왔다.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수록 희생적 지도자와 희생적 조직원이
기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