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검토설이 나돌던 부도유예협약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일단 다행한 일이다.

지난 4월 제정이후 많은 부작용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이를 폐지할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을 더욱 혼란에 빠뜨릴 우려가 크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일 은행장회의에서 개정된 부도유예협약의 내용을 보면
그동안 노출된 문제점 보완 이외에도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기아에 대한
압박의도도 짙게 배어 있음을 쉽게 알수있어 뒷맛은 개운치가 않다.

개정된 내용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핵심은 두가지다.

하나는 최고경영진의 사표를 포함한 경영권포기각서와 인원.임금감축
등에 관한 노조동의서, 자금관리단 파견동의서 등을 협약적용 이후 10일
이내에 열도록 돼있는 1차 채권금융단 대표자회의 때까지 제출토록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협약의 연장적용을 배제한 것이다.

두가지 모두 기아해법의 최대 쟁점사항으로 오는 29일로 부도유예기간이
끝나는 기아에 대해 연장적용을 하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하는 최후통첩으로
보아도 무리는 아닐성 싶다.

물론 부실기업 회생은 철저한 자구노력이 전제돼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경영권 포기각서와 노조의 자구노력동의서를 지원초기에 징구키로 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또 부도우려 기업에 대한 채권행사 유예기간이 길면 길수록 자생적인
정상화는 그만큼 늦어지고, 금융시장의 불안을 오히려 조장하는 측면도
없지 않기 때문에 비상조치적 성격인 부도유예는 적용기간이 짧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연쇄도산을 막고 자력회생을 도와주는 협약의 기본취지가
달성됐을 때만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보면 협약적용기한을 2개월로 하고 연장도 원천적으로 배제키로
한 것은 다소 무리한 조건이 아닌가 싶다.

기업에 대한 자산 실사와 회생여부를 두달안에 마치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번 개정에서 해당기업이 발행한 진성어음을 할인해준 채권금융기관은
협약적용기간중에는 해당어음의 환매청구나 소구권행사를 유예토록 한
것이나 협약가입기관을 생보사 등에 확대한 것은 그간의 운용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완했다고 본다.

그러나 협약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행정의 투명성과
일관성 확보문제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이 지키기 어려울 만큼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고 있어 폐지를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음도
정부는 염두에 두어야 할줄 안다.

사실 기아해법이 꼬인 것은 정부와 기아간의 상호불신에서 비롯된 점도
많다.

특정기업에 대한 기아의 제3자인수 시나리오설 등이 그 대표적인 것으로
사실 여부를 떠나 오해의 소지도 많았고 따라서 정책이 신뢰를 받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금융단은 규정에 얽매인 독단적 강제보다 기업현실과 금융환경을
감안한 협력적 지원차원에서 협약을 적용하고 보다 과감한 지원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