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남미의 호텔에서 보다 더 진한 동침의 순간을 가지면서 자기들이
섹스에 미쳐 있다고 깔깔깔 웃어댄다.

그렇게도 사랑은 즐거운 것인가? 그들은 거의 웃으면서 만족스러운
섹스를 한다.

다른 이야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필요하지도 않다.

무아의 경지속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섹스의 광폭한 물결에 휩싸인
지영웅이 두번째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높이 오르고 있을때 어디서 전화가
온다.

영신은 곧장 메모리장치로 스위치를 누른다.

세번째 남편은 자기가 골라준다고 경을 읊어대는 아버지 김치수 회장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녹음된다.

보통때 같으면 영신은 몸을 도사리고 경청할 것이다.

"너의 이혼재판은 걱정 안 해도 된다.

윤사장이 나에게 항복하는 팩스를 넣었고 변호사에게서도 고소 취하의
연락이 왔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너의 건강이고 이 애비는 네가 병원안에서 나마
혼자 워킹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

그러니 어서 건강하게 일어서서 뛰어다니는 일만 남았구나.

지금은 오후다섯시다.

밤에 또 전화하마.참 걸을 수 있으면 언제든 차를 보내줄테니 강변
드라이브를 가려무나.

전화해줘. 너의 애비가 걸었다"

그들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또 쿡쿡 웃는다.

사랑은 웃는 것일까? 웃는 것으로 표현되는 예술일까? 아무리 위대한
작가도 이러한 사랑의 풍경이나 음향을 예술로 표현하기 어렵다.

웃음으로 꽃이 피어 있는 이러한 사랑의 순간은 음악으로도 향기로도
똑같은 강도와 부드러움을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아무튼 그들은 짐승처럼 꽉 엉켜 사랑의 원형을 그려내고 있다.

사랑의 풍경은 표현하기 힘든 음악이다.

완벽하게 표현하기 힘든 광경이다.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서로를 흡입하고 또 흡입한다.

그들의 율동은 어떤 안무가도 흉내낼 수 없는 격정과 리듬을 조형하고
있다.

누구도 지금의 그들처럼 만족스러운 신음을 뱉을 수 없다.

맛있는 과일이고 향기이고 꿈에서 처럼 환상적인 현실이다.

그들은 그러한 상태에서 차라리 죽고 싶다.

영신은 자기같이 맹숭맹숭한 섹스를 하는 여자가 어떻게 이런 황홀한
순간을 누리고 있는가 정말 꿈만 같다.

아버지의 음성은 그들의 달콤한 사랑앞에 무기력한 음향처럼 멀리
들리다가 사라진다.

어떤 격정적인 음악도 지금은 무색하다.

그녀는 아버지의 음성이 이렇게 멀리 들린 적이 한번도 없었고 지영웅은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이처럼 맛있는 건 없다고 감격한다.

그는 육체의 향기에 취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향기에 파묻혀서 행복하고
신비스럽도록 황홀하다.

낙원이 이럴까? 아니 이것은 낙원 이상이다.

밤꽃냄새 지독한 낙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