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풍성한 추석보너스기대로 들뜨게 마련이지만 기업
모두가 혹독한 경제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올해는 체불임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4천억원에 육박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만 들려오고 있다.

노동부집계에 따르면 지난 7월말 현재 전국 1천2백41개 업체에서
5만6천7백75명의 임금 1천9백43억원이 체불됐다.

이는 사상 최대규모로 전년동기(8백15억원)의 2.3배에 달하며 기아그룹의
체불임금 1천8백억원을 비롯 미신고 업체들의 체불임금을 더하면 체불규모는
4천억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올들어 이처럼 체임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은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기업도산이 속출하는 가운데 특히 한보 기아 등 대기업의 부도사태로
대규모 체임이 발생한 탓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이같은 임금체불 사태에 대해 지방노동관서에
특별기동반을 편성, 체불임금청산을 독려하고 악덕 체불업자는 구속키로
하는 등 처벌을 강화키로 했다지만 별로 효과가 있을 것같지는 않다.

경기가 장기불황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외환
위기까지 겹쳐 올 추석은 그 어느해보다 기업들에 큰 시련의 고비가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통화량은 늘었지만 돈이 안도는 기현상이 사라지지 않는한 아무리 정부가
독촉한다고 해서 없는 돈이 생겨날리 없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책임과 고통은 정부와 기업은 물론
근로자들도 상당부분 나누어 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올해 임금협상이 큰 탈없이 넘어갈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책임의식의
발로였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임금체불은 경우가 다르다.

사회보장제도가 발달되지 못한 우리의 경우 임금은 거의 유일한
생계수단이며, 때문에 임금은 모든 채권에 우선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전체 체불업체의 30%에 달하는 3백83개 업체가 지불능력이
있으면서도 밀린 임금을 청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납득이
안된다.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대규모 체임이 사회문제화 되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

지불능력이나 담보능력이 있는 업체에 대해서는 별도의 체불청산 계획서를
제출받아 금융기관의 지원을 적극 주선하고 지불능력이 없는 사업체에
대해서는 신속히 민사상의 변제절차를 밟도록 지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만에 하나 퇴직금우선변제 규정의 헌법불합치 결정이나
연월차수당을 안줘도 된다는 노동부의 행정해석 등을 악용하여 임금까지
고의로 미루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행정지도가 있어야 하겠다.

최근 몇년사이 우리기업들은 고비용-저효율의 구조적 취약점을 안은채
무한경쟁을 헤쳐나가느라 급격히 기력을 소진했다고 봐야 한다.

그 결과 1천만 근로자들의 생계 원천인 임금을 못주고 못받게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임금체불을 줄이는 첩경은 기업의 체력강화에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해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