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선수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날로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커다란 몸집의 미국 타자들이 방망이를 높이 들고 잔뜩 노려보고 있는
상황에서 박찬호가 3진을 잡아 내는 것을 보면 통쾌하기 그지 없다.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홈런으로 한순간에 경기가 뒤집어질 수 있는 것이
미국 프로야구이니 13승을 올리고 14승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니 충분히
박찬호 열풍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는 진정 성공하고 있는 프로야구 선수다.

박찬호의 성공이 더욱 값진 것은 그가 보여준 각고의 노력 때문이다.

성공한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오늘의 박찬호가 있기까지는 마이너리그
에서 햄버거와 콜라로 끼니를 때우던 인고의 세월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 나라에도 프로야구 선수들이 많다.

그들도 나름대로는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에 건너가서야 이런 대물이 나오는 것인가.

많은 이유가 있으리라.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우리 나라에서는 진정으로 프로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정상에 오를 수 있고, 또 이를 인정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자리잡고 있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최소한 우리 나라에서보다는 더 그러하다.

바로 이런 믿음이 박찬호가 낯선 이국 땅에서 열심히 훈련하여 인고의
세월을 참고 견디게 한 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언제부터인가 남이 이룩한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배경이 좋든지 아니면 대단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지
자신의 노력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실패는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사회 구조적 모순"
때문에 그렇게 되었으니 나는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다.

가난한 것도 나의 탓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으로 돌려진다.

사회의 기강은 해이되고 생산활동보다는 남이 이룩한 과실을 서로
차지하려는 일에 힘을 쏟는다.

노력의 결실로 정상에 우뚝 서게 되면 존경과 이상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질시와 모략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높다란 부의 봉우리에 우뚝 선 우리의 기업가들이 어떠한 평판을 받았는가.

서태지와 아이들이 지난한 노력과 시대를 앞서는 예견력으로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을때 찬사와 함께 얼마나 많은 지탄이 쏟아져 나왔었는가.

실정이 이렇다 보니 어디에 프로 의식이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며,
어디에서 세계적인 스타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범죄의 증가도 이렇게 사회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혹자는 범죄를 경제성장으로 인한 황금만능주의의 결과로 돌리지만,
역사적으로 볼때 범죄는 책임소재가 내가 아니라 사회로 돌려지면서
증가하였다.

프로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자신의 노력에 의해 일구어낸 성과가 정당하고 당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곳에서 프로는 나온다.

사회 구조적인 이점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부단한 노력의
결실로 성공한 것이라는 긍정적인 인식과 그에 대한 실질적인 대가가
상응되는 곳에서 프로가 나온다.

더러는 성공과 실패를 개인적인 노력과 능력, 그리고 거기에 따라주는
운의 문제로만 보면 실패한 사람들이 쉽사리 자기 절망감에 빠지고,
지나치게 경쟁을 조장하여 비인간적인 사회를 만든다는 측면에서 프로가
대접받는 사회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인 프로의 세계보다는 모두가 참여한 그 자체로
의의를 갖는 아마추어의 세계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 정신과 아마추어 정신중 어느 것이 더 발전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는가.

성취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개인의 발전에 커다란 동기를 부여하고
에너지를 생산해 내며, 그것이 실질적인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며, 이런
사회발전을 바탕으로 우리 모두가 잘살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사회 구조적 모순"이라는 그늘 뒤에 숨는 것이, 경쟁을 두려워하여
기득권 고수에만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비겁한 자기 합리화인지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프로란 박찬호와 같은 대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삶의 모든 곳에 프로는 필요하다.

식당 종업원이 기분좋은 얼굴로 손님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게 음식물을
차려놓는 것, 미화원이 공원의 쓰레기를 말끔하게 치우는 것, 운전자가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안전운전을 할 수 있는 것,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 교수가 진지하게 학문을 탐구하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이 프로의 세계다.

진정으로 프로가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인간적인
사회이다.

프로를 존중할줄 아는 분위기가 확산되어야 한다.

단순히 참가하는 데서만 의의를 찾는 것과, 참가한 사람들은 1등이나
꼴찌나 같이 형평에 맞게 나누어 갖는 의식과, 나이와 서열만을 근거로
몫을 나누는 태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참가하는 것도 의의가 있지만 승리하는 것과 승리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진정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다.

<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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