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한순간의 유희나 기분전환으로 끝나기도 하고 어떤이의 인생행로를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배낭여행전문사인 배재항공여행사의 성호제(31)씨.

국내 최고의 여행전문가를 꿈꾸며 여행업에 뛰어든지 2년째.

경력이라야 일천하다.

그러나 그는 요즘 배낭여행사의 최대성수기라 할수 있는 방학시즌이 끝난
배재항공을 먹여살리는 중책을 맡고 있다.

대학생의 특권인양 인식됐던 배낭여행에 직장인을 끌어내면서다.

뿐만 아니라 여름 겨울방학시즌에 벌어 1년을 근근이 버텨왔던 배낭여행사의
업종개념도 바꿔 놨다.

그가 처음 배재항공과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 3학년때.

배재항공을 통해 장장 40여일동안 북유럽과 남유럽을 훑어가며 13개국을
여행한 것이 계기가 됐다.

아직 배낭여행바람이 대학가를 강타하기 전이다.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어요. 여행을 마치고 김포공항을 밟는 순간 인생의 목
표가 바뀌더라고요"

그러나 세계 곳곳을 돌며 여행이나 하며 살기에는 인생살이가 그렇게
녹록할리 없다.

서울대 도시공학과를 졸업한뒤 자의반 타의반으로 건설회사에 취업했다.

부모님의 기대도 있고 어쨌든 최소한의 여행경비라도 마련해야 했기 때문
이다.

여행마니아에게 조직생활의 적응이 쉽지 않았다.

마음은 매일 파리나 알프스를 헤매는데 따른 권태는 견뎌본다 치더라도
월차 휴가 등을 아무리 끌어내 봤자 빡빡한 여행기간이 성에 차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고작 6개월을 버티고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2년을 목표로 고시에 매달려 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법전옆에 펼쳐진 세계지도에 자주 곁눈질이 갔다.

2차시험에 떨어지고 바로 미련을 버렸다.

그에게 고시패스는 어차피 목적이 아닌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

목적과 수단을 동시에 만족시킬만한 일거리를 찾다가 여행사 취업을 결심
했다.

최소한 여행정보는 충분히 모을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대 졸업장과 전공이 번번이 장애가 됐다.

서류전형에서 밀어낸 회사를 직접 찾아가 항변도 해봤다.

결국 여기저기 수소문끝에 5평 남짓한 사무실에 몇몇 직원이 전부인
소규모여행사에 간신히 몸을 의탁했다가 지금의 배재항공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침에 출근하면 마음은 벌써 세계 구석구석을 누빕니다. 여행사는 무엇
보다 여행만 생각할수 있는데다 연공서열 필요없이 아이디어만 풍부하면
금방 뜰수 있어요"

그는 올해 직장인들을 위한 8일 일정의 최단기 유럽배낭여행상품을 기획
했다.

그가 4번의 유럽여행으로 개척한 프랑스 스위스 로마 등 3개국 최고
코스만을 엄선한것으로 항공권을 비롯해 호텔숙박과 현지 철도패스를
포함한 것이다.

첫째날 파리에 도착해 2박하고 스위스 베른을 거쳐 인테라켄으로 향한다.

알프스의 봉우리중 하나인 융프라우를 오르기 위해서다.

5일째 로마로 향해 이틀을 보내고 7일째밤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
된다.

별다른 홍보도 없었는데 직장인들 뿐만 아니라 신혼여행자나 젊은 부부 등
패키지상품에 식상한 사람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그는 현재 유럽지역 호텔패스를 개발중이다.

여행도중에 지정된 호텔로 이동해야 한다는 부담을 덜고 배낭여행의 참맛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 자신도 틈만 나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여행경험이야말로 새로운 상품을 기획하고 여행전문가의 꿈을 실현할
최대의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4번의 유럽여행을 포함, 일본 동남아 캄보디아 태국 캐나다 등을
여행했다.

여행을 마치면 반드시 자신의 경험을 차곡차곡 정리해 둔다.

그는 조만간 여행정보안내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 손성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