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물상지란 말이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원래 이 말은 동양 고전의 하나인 "서경" "여오편"에 나오는 것으로
"기묘한 물건에 빠지면, 뜻을 잃기 쉽다"라는 뜻이다.

지난주의 몇가지 언론 보도가 내게 이 말을 떠올리게 했다.

어느 지방의회 의원 한명이 외국 관광에서 돌아오면서 1천만원이 넘는
시계를 들여오다 말썽이 났다.

경주에서는 진덕여왕 능이 도굴당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도굴이 얼마나 성행하는지도 함께 보도되었다.

그런가 하면 바로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해방이후 줄곧 국보급 보물로
여겼던 고대 일본의 유리구슬이 50년 전에 만든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50년 전에 만든 유리 구슬을 1천년도 더 지난 고대 유물이라며 귀하게
여겼으니, 그런 우스꽝스런 일이 어디 있을까.

지난 반세기 동안 그것을 박물관에서 구경해온 수많은 사람들은 그 오묘한
고대인의 기술에 얼마나 놀라워 했을까.

그런 사람들은 이 보도를 읽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가짜가 아주 많으리라고 짐작된다.

전세계의 박물관에는 그런 유물들이 얼마든지 전시되어 있을지 모른다.

불과 1년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가짜 총통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온통 뒤흔들어놓은 적이 있지 않은가.

과학기술이 하도 발달하여 임진란때의 총통만드는 일쯤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이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의 과학기술 실력으로 그런 총통을 만드는 데에는 원가가 5만원도
들지 않을지 모른다.

물론 그것을 극비리에 해내려니, 그에 따른 부대 비용이 훨씬 더 들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낸 가짜 총통은 4백년전의 국보로 둔갑하여 아마
5천만원은 거뜬히 건질 수 있을 것이다.

5억원을 호가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누가 그런 유혹을 떨쳐 버릴 수가 있을까.

게다가 한번 가짜를 만들어 진짜로 둔갑시켜만 놓으면 문화재의 특성상
그것이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란 대단히 어렵다.

일본의 경우 우연히 당시의 기록에서 그런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알려진
것이고, 우리나라 총통의 경우도 다른 수사과정에서 그 총통이 가짜였음이
밝혀졌을 뿐이다.

이렇게 드러나지 않은 적지 않은 가짜들이 지금 세계의 박물관을 더욱
빛내주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도굴꾼이 판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역시 몇만원 어치의 야간 작업으로 몇억원 어치를 벌 수 있는 길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은 누구든 방안에 앉아서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도 몇억원씩
뇌물을 받아 챙기는 세상에 밤새워 땀을 흘려 몇천만원 버는 일이 뭐가
나쁘냐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여하튼 지난 5년 동안 도굴된 매장문화재는 19건으로, 해마다 4~5건 정도
라는 보고가 있다.

이는 도굴여부가 확인된 것일뿐 실제는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를 일이다.

경주시가 관리하는 왕릉 36기 가운데 3분의1인 12기가 이미 도굴됐고,
나머지는 도굴여부가 불확실한 상태다.

도굴꾼이 파낸 흙을 제자리에 덮어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알아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도굴꾼의 천국"이라고 고고학자들은 말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사실은 현대인의 완물정신 때문임은 물론이다.

그것은 바로 저 지방의회 의원이 가지고 있는 1천만원짜리 시계에 대한
욕구와도 마찬가지다.

원래 시계란 시간을 알기 위한 과학기술의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의원이 1천만원짜리 시계를 차고 나가야만 회의가 시간 맞춰 잘 진행
되고, 그 지방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하철 입구에서 몇천원짜리만 사서 차고 다녀도 그 의회는 끄떡없이 잘도
움직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남이 갖지 못한 값비싼 특이한 물건을 탐한다.

여유가 생기면서 한국인들의 완물 정신도 유감없이 발휘되기 시작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여행이 잦아지면서
외국 문화에 대해서도 눈이 높아지고 있다.

당연히 이런 저런 박물관도 생겨나고 있다.

나무랄 일이 아니지만, 그 결과는 역시 완물 정신이 함께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도굴꾼과 가짜 제조를 방지하기 위해 문화재에는 반드시 족보를
밝히는 의무 조항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언제 어디서 누가 발굴하여, 어떤 경로로 여기 전시하게 되었음을
밝히자는 것이다.

예를들어 지금까지 이미 발굴되어 개인이나 박물관이 소장한 것들은
1998년말까지 신고하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조치를 국내에서 실시해 볼 수 있다쳐도, 이미 너무도 많은
우리 문화재가 외국에 유출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법령으로도 우리
문화재를 제대로 관리할 도리는 없을 것같다.

도굴꾼이 외국에 수출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완물상지"타령이나 하면서, 지나치게 완물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나 해두는 수밖에 없다.

원래 이 말은 임금에게 간하는 말로 "귀나 눈의 즐거움에 탐닉하지 말라.
그러면 모든 법도가 바르게 될 것이다. 사람과 즐기기에 탐닉하면 덕을 잃게
되고, 사물의 진기함에 탐닉하면 뜻을 잃는다"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가 무르익고 있는 오늘의 한국인에게 물질적 사치와 문화적
사치를 함께 경고하는 말이다.

요즘 세대에 지나친 오락과 사치를 경고하는 이 말이 제대로 귀에 들릴
리가 없을 터이니 그것이 걱정일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