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청소년 비행의 온상인가"

만화 유해논쟁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인기만화가가 구속되고 음란 폭력만화를 실어온 스포츠신문 편집국장들이
기소되는 등 검찰측 초강경조치가 잇따랐다.

일부 인기만화가들이 시한부 절필을 선언하면서 즉각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모든 청소년문제가 만화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창작행위에
대한 명백한 탄압이라는게 만화계의 주장이다.

만화는 대중문화에 속한다.

만화는 이제는 더이상 코흘리개 쌈짓돈을 노리는 음성적 매체가 아니다.

당당한 대중문화매체의 반열에 올라선지 오래다.

이에 따라 만화산업이 21세기 최고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선도산업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올 정도.

그래서 만화계의 반발도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실리고 있다.

반면 음란 폭력만화를 고발하는 시민단체들은 청소년보호를 위해 지나친
부분에 대한 제재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검찰측 강경조치도 청소년문제가 급부상하고 있는 사회여론을 등에 업고
있어 한편으로 설득력이 있다.

사실 일본 불량만화들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학교폭력과 10대들의
성윤리 붕괴의 간접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엄연히 성인용으로 출판된 이현세씨의 "천국의 신화"를 타깃으로
삼으면서 화를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누가 보더라도 음란 폭력만화로 밖에 규정지을수 없는 것들까지 현대판
마녀사냥의 희생양인양 떠들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기도 했다.

PC통신에도 검찰측 조치를 성토하는 글들이 가득 채워졌다.

"음란물이나 폭력물에 대한 검열선풍이 불때마다 짜증이 나요.

이는 국민의 의식수준을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어떻게 만화 한두권 보고 비행을 저지를수 있다는 발상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가요"(Y대 재학생)

그러나 일부 만화가 유해시비에 휘말리게 된 것은 만화내용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만화가게 진열대의 50~60%를 차지하는 일본 불량만화의 경우 그 유해
여부를 부정하기는 어렵지 않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사회의 건강한 윤리와 도덕이 지켜지는 범위내에서
보장돼야 합니다.

최근 청소년들에게 쉽게 노출되는 만화의 경우 폭력과 음란의 강도가 지나친
것 같아요"(직장인 K씨)

음란 폭력만화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국내 만화유통구조가 개선돼야 한다는게
만화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일본 불량만화의 경우 출판사 등록도 하지 않고
지하에서 몰래 복제하는 해적판이 대부분.

이처럼 일본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자행되는 일본만화의 불법유통이 바로
음란 폭력만화의 양산을 부추기고 우리만화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는
것.

특히 일부 만화가들의 경우 일본 것을 그대로 베낀 작품들을 버젓이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외설논쟁에서 경험했듯이 일회성 단속이나 처벌이
음란 폭력만화 근절에 큰 효과를 낼수는 없다.

더구나 창작물의 유해여부를 가리는 주체가 사법당국일때는 선의의 만화가나
문화계 전반의 창작의욕을 위축시킬수 있다.

그러나 음란 폭력만화가 판치는 현실을 책임져야할 당사자는 바로 만화가
자신.

관계당국이 칼날을 들이대기전에 만화가 스스로의 정화노력이 선행됐어야
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 손성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