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는 원래 중국에서 비롯되었다.

후한이후 대대로 고위관직을 배출하는 가계가 성립됨에 따라 문벌과
가풍을 중시하는 사상이 높아져 육조시대에 이르러 족보의 작성 및
보학이 발달했다.

한국의 족보 간행은 고려시대에 시작되었다.

"고려사"에는 귀족들이 씨족계보를 기록하는 것을 중요시 했고 관청에서
족보를 관장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 귀족 사이에 가계를
기록 보존하는 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 씨족 또는 한 분파 전체를 포함하는 지금과 같은 족보가 출현한 것은
조선조 중기였다.

1423년 (세종 5)에 간행된 문화유씨의 "영락보"가 최초의 족보로 알려져
있으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족보는 1476년 (성종7)에 간행된 안동권씨의
"성화보"다.

그뒤 족보 간행은 모든 씨족에 보편화되었다.

서양에도 오랜 옛날부터 가계의 기록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양의 족보와는 달리 개인의 가계사에 가까운 것이었다.

"성서"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에서 시작되는 유태민족의 가계기록이
서양족보의 시초였다.

그러나 서양의 대부분 사람들은 2,3대 위의 조상들을 기억하는게
고작이었다.

국왕이나 왕족 귀족 등의 가문에서만 가계 기록을 보존했을 뿐이다.

서양에서 족보 연구를 학문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아일랜드의
존 버크였다.

1820년 "영국의 귀족과 준귀족의 혈통사전" 초판을 내놓은데 이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의 왕족"등 여러 권의 족보연구서를 편찬했다.

약 20년전 미국에서 앨릭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가 히트하면서 뿌리찾기
붐이 일었던 무렵인 1975년에 "미국대통령의 가계"가 출간되어 많은 관심을
끌었다.

보학자들은 G 워싱턴, T 제퍼슨, J 먼로, A 링컨, T 루스벨트, R 닉슨
등 12명에게서 유럽왕실의 핏줄을 찾아냈던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또다시 뿌리찾기열풍이 불고 있다.

자신의 가계와 혈통을 추적하고 있는 미국인이 4천2백만명에 이른다는
추정이다.

이제 선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풍조가 명문가계나 동양에 국한된
현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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