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아버지는 초능력을 가진 남자면서 어머니 하나로 만족하면서
사셨잖아요?"

"그렇게 믿어두려무나. 그렇지만 나에게도 로맨스가 더러 있었다고 하면
어머니에게 일러바칠 거냐?"

"아뇨, 절대로 안 일러요. 그러니까 좀 들려주세요"

"그만두련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이 멍청아, 너는 윤가 녀석이 얼마나 악랄한 놈인데 전화로 새로운
애인과 무슨 망측한 소리를 했는지 다 도청이 된 모양이야. 오리발을
내밀지도 못하게 돼 있대요"

"변호사가 그래요? 그들은 서로 통하나보지요?"

"법정에서 싸우든가, 대화로 해결을 짓든가, 둘중에 하난데 이번 사건은
서로 지명도가 있으니까 합의로 끝내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 위자료를 많이 주면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건가요?"

"그렇지"

김치수 회장은 분해서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

"아버지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남자를 사귀어도 좀 된 놈을 사귀어야지, 겨우 골프코치냐?"

"아버지, 그는 변강쇠예요. 세상에 그보다 더 힘 좋은 깡쇠는 없을 걸요"

"뭐?"

그는 실색을 하면서 뒤로 물러앉는다.

이 딸래미가 정말 어지간히 애비 망신을 시키는구나.

고약한 것 같으니.

그는 벌떡 일어서면서 영신을 향해서 눈을 흘긴다.

영신은 애교있게 웃으면서, "아버지, 다 말씀 드릴게요"

"듣기 싫다. 네가 도대체 나이가 몇살인데 이렇게 애비 망신을 시키는
거야? 이젠 어디에 남자가 없어서 공치는 놈팽이냐?"

"그냥 골퍼가 아니고 프로예요 프로"

그녀는 거짓말을 약간 섞는다.

어떻게든 지영웅을 이미지업 시키고 싶다.

레이디 킬러로 소문이 나 있는 지영웅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정말 겁이
은근히 난다.

"정말 심플하고 매너가 깨끗한 골프코치예요"

그녀가 애원하는 태도로 나오자 김치수는 마음이 풀린다.

그러나 아직 딸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아버지, 잘못했어요. 자보지도 않고 결혼했다고 뭐라셨잖아요? 그래서
저도 이번에는 심사숙고해서 정할 거니까 너무 걱정 마셔요"

"애인 관계로 끝나는 아이지? 그 프로 녀석은?"

"네. 그런데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너무도 대단한 변강쇠예요. 저는 정말
까무러칠뻔 했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혀를 낼름 내밀고 아버지의 눈치를 힐끔 재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