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총여신이 3백억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대출심사기준이 나올 모양이다.

은행협회가 중심이 돼 마련한 이 심사기준은 금주중 각 은행의 승인을
거쳐 내달부터 적용될 예정인데 기업체평가표등 종래의 심사기준에 비해
"평가의 객관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최근 3년간 계속 적자를 냈거나 연간 매출액이 금융기관차입금을 밑도는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신규대출을 해주지 않는 것은 물론 자구계획을
받겠다는게 새 기준의 골자다.

또 부채비율이 5백% 이상이거나 금융비용부담률이 10%이상인 그룹에
대해서도 여신을 제한하고 의류 주택건설업 등을 사양업종으로 분류,
여신비율을 줄이겠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한보사건때 드러난 것처럼 종래의 금융기관 기업체평가는 사업성
재무구조 경영자자질 등을 종합적으로 보게 돼있어 실제 운용과정에서
평가하는 사람의 자의가 개입할 여지가 적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재무제표 그 자체가 신뢰성이 높지 않은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3년간
계속 적자" "차입금을 밑도는 매출" "금융비용부담률 10%이상"등으로 기준을
명확히 한것은 평가의 객관성을 높여 대출부조리를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할만 하다.

지금까지 빚어진 대형 금융사고가 거의 하나같이 부당한 외부압력을
은행이 견뎌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대출을 해주지 말아야할
신용불량의 평가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은 특히 의미가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새 여신심사 기준은 평가의 잣대를 단순화했기 때문에
부당한 대출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이 될수 있으며,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높이는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할수도 있다.

새기준이 현실적으로 적잖은 문제를 수반하게 될 것이란 점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선 "부채비율 5백% 이상에 대한 여신제한"만 하더라도 기아 한화 두산
한진 진로 동일 뉴코아 등 적잖은 그룹이 해당한다는 점이다.

이들 그룹에 대해 신규대출이 획일적으로 제한될 경우 그 파장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새 심사기준이 전반적으로 종래의 그것보다 강화되는 방향인데다 업종의
특수성이 감안되지 않은 문제점도 없지 않기 때문에 이래저래 업계의 반발을
부를 가능성도 크다.

부채비율 자기자본비율 등은 업종의 특수성에 따라 현격한 차이가 있게
마련인데 각 그룹의 주력업종 등을 감안하지 않고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형식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올수 있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한도초과 지급보증을 전액 내년3월까지 해소하라는
공정거래위의 통보에 겹쳐 새 심사기준에 대한 업계의 불만이 증폭될
소지도 적지 않다.

우리는 새 심사기준이 대기업집단의 구조조정노력을 유도하는등 기본적으로
옳은 방향이라고 보지만 업계사정도 충분히 고려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본다.

새 기준의 부작용없는 정착을 위해 은행협회는 다른 사업자단체들과도
긴밀한 사전협의를 가질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