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종합운동장과 롯데월드의 중간쯤 자리잡은 지하철2호선 신천역
뒤편(잠실동).

이곳은 쾌락주의자(epicurean)들의 공간이다.

먹고 마시고 노는 것외에 다른 문화는 그 파편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20대 초반.

이른바 "좋은 물"에 몸을 담궈보려는 이들과 그 "좋은 물"축에 들어보려는
이들이 한데 어울려 쾌락을 좇는다.

이곳 주변에 처음와 보는 사람들은 우선 규모에 놀라게 된다.

끝이 안보일 정도로 길게 늘어선 유흥가.

눈이 닿는 자리는 모두 울긋불긋한 간판으로 메워져 있다.

그것도 모자라 카페와 주점들이 계속 주택가를 먹어들어가고 있다.

평일에도 오후 대여섯시만되면 댄스 뮤직을 쏘아대는 "길보드"수레들
사이로 섹시한 차림의 남녀들이 붐비기 시작한다.

이 쾌락의 거리가 성당앞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바보 스테이지"로 불리는 신천성당앞은 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해가 뉘엿뉘엿할 무렵,2차선은 족히 되는 유흥가는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보일듯말듯 얇은 옷차림의 젊은 여자들을 싣고 사람들 사이에서 급정거
급가속을 거듭하는 대형승용차들은 압구정동에서 자취를 감춘 오렌지족들이
이곳에 새로 둥지를 틀었음을 말해준다.

취기를 빌어 겨우 이 거리로 들어선 사람들은 골목으로 한 걸음만
들어서면 또 다시 놀라야 한다.

방금 맥주 한잔을 마시고 나온 카페와 등을 맞댄 건물이 바로 러브호텔이기
때문이다.

대로변에선 빌딩에 가려 안보이지만 지하철신천역에서 아시아공원에
이르는 근 1km에 걸쳐 여관골목이 형성돼 있다.

평일인데도 밤 11시정도면 러브호텔앞은 차대기도 힘들 정도가 된다.

물론 방잡기는 이미 늦은 시간이다.

한 모텔 주인은 "손님 대부분이 20대"라며 "평일 낮에도 방이 절반은
찬다"고 말한다.

88서울올림픽때 조성된 이 거리는 90년대 초만해도 갈비집과 호프집
몇개가 띠엄띠엄 자릴 잡고 있을 뿐이었다.

야구장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한 뒤에 컬컬한 목을 축이기 위해 찾던
이 거리가 구세대는 발붙히기도 어렵게 된 것은 불과 3~4년전부터라고한다.

한 로바다야키점 주인은 "몇년전까지만해도 주변 사무실 직원들이
주손님이었는데 지금은 젊은사람들이 대부분인데다 임대료도 올라
생선구이점에서 로바다야끼점으로 업종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김용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