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성장한계이론''으로 유명한 폴 크루그먼 미 MIT대학 교수는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지 최근호(8월18일자)에 기고한 ''아시아의 기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글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경제혼란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경제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역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제문제보다 심각한 것은 이같은 금융위기사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관리들의 무능력이라는게 크루그먼 교수의 주장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따라서 아시아 각국 정부는 하루 빨리 자국 경제의
한계와 가능성을 신속히 파악해 적절한 처방을 제시하지 않으면 아시아의
장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진단했다.

그는 또 "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인력 등 많은 성장요소를 소진했기 때문에
앞으로 고속경제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 정리 = 김수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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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페소화폭락사태로 중남미는 물론 전세계금융시장이 대혼란을
겪은지 2년이 지난 지금 아시아지역에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태국 바트화폭락으로 촉발된 아시아의 금융위기사태는 필리핀(페소),
말레이시아(링기트), 인도네시아(루피아) 등 대부분 아시아국가를
강타하면서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은 어디인가.

아시아지역의 모든 국가가 사정권안에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앞으로 대부분 국가들이 이자율상승, 수출가격인하, 자본유입감소, 성장률
둔화 등으로 금융위기의 여진으로 상당기간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우리의 관심은 오히려 아시아경제의 장래에 촛점이
맞춰져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과연 이 지역경제가 금융충격에서 벗어나 빠른 회복세를 나타낼지 그리고
현재의 경기침체는 금융위기로 인한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이른바
"아시아의 기적"이 영원히 끝이 났는지 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년전 발표한 "성장한계이론"때문에 아시아국가들은 매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전체 아시아의 적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아시아의 기적을 설파한 미국의 학자들마저도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성장한계이론은 아시아각국이 경제요소의 집중적인 투입(input)을 통해
지난 20년간 엄청난 산출(output)을 이뤄냈다는 이른바 "땀이론"이 그
핵심이다.

아시아의 기적은 단지 열심히 일한 결과이며 창의적인 기술개발을 통한
경제성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에서는 반박이론을 내놓았다.

그러나 "땀이론"은 아시아지도자와 그 추종자들이 소중히 간직해온 두가지
믿음을 뒤엎었다.

먼저 아시아 각국 정부가 주도한 특정산업육성과 기술촉진을 통해
효율성이 크게 향상됐다는 확신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믿음으로 판명났다.

경제의 효율성은 결코 향상되지 않았으며 정부의 "탁월한" 산업정책은
점차 애매모호해지고 있다.

또 하나는 아시아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력 등 한정된 자원을 투입해 엄청난 성장을 이룩해왔다.

그러나 이 자원은 일회용으로 한번 쓰면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이를 근거로 "땀이론"은 조만간 아시아경제성장이 둔화될 것으로 점쳤다.

특히 싱가포르 등 "아시아 4룡"국가들은 성장둔화의 순간을 더욱 빨리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국가들은 이미 국내총생생산(GDP)의 절반가까이를 "소비"해버렸기
때문이다.

저임금 국가인 중국처럼 아직도 인력 등 사용할 "무기"가 많은 국가들
에게는 그 순간이 다소 늦게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아시아가 어려운 상황에 부딪힌 것만은 분명하다.

태국의 경우 최근 금융사태는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폭락 그리고 금융
시스템의 파멸을 초래했다.

한국도 최근 대기업의 잇단 부도사태로 인해 금융기관들의 부실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더욱이 이 지역의 대부분 국가들은 현재 위험수위의 경상수지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지난 95년 페소화폭락사태가 터지기 직전 멕시코의 경상수지적자폭
보다 훨씬 큰 것으로 밝혀져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아시아경제의 이같은 급격한 추락은 "땀이론"에서도 예측하지 못한
것이지만 오히려 불행중 다행이다.

왜냐하면 이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온 경기침체는 그동안 경제활황의 가면을
쓰고 다가온 심각한 문제들을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일본이 대표적 케이스다.

사실 일본은 모든 서구국가들이 "일본경제를 배워야 한다"고 떠들던 10년
전부터 경기침체를 맞이하고 있었다.

다만 일본의 경기침체가 부동산가격폭등과 주식시장활황으로 대표되는
"버블경제"의 탈을 쓴 채 다가왔기 때문에 미처 이를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거품경제는 결국 폭발했으며 참혹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시아 여타 국가들은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을
누려왔다.

그러나 한국, 태국 등이 지난 90년대 초반 기록했던 고속성장은 지난해
부터 서서히 한계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성장한계의 주원인으로는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인상, 과도한 국내소비,
급증하는 무역적자 등이 꼽히고 있다.

이른바 "땀이론가"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통해 한 나라의 경제성장이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징후를 파악해 왔다.

아시아의 경제혼란에서 배워야 할 가장 커다란 교훈은 그러나 경제문제가
아니라 바로 정부의 역할이다.

아시아경제가 좋은 소식만 전해주면서 고속성장을 거듭할 때는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하는 정부관리들이 모든 경제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확신을 국민에 심어줄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다.

이들 경제정책입안자들은 경제난국을 헤쳐나갈 방법과 수단을 마련하지
않고 있었던 것.

심지어 고속성장을 누리고 있을 당시에도 이들이 경제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징후는 여러곳에서 발견됐다.

실례로 지난 85년 일본 대장상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사무실분위기에서
일본관리들의 안일함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방부의 "전쟁모의실"처럼 긴장감이 돌기는 커녕 먼지가 쌓인 복도와
파괴된 집무기기 등으로 오히려 "자동차부"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결국 문제가 발생했을 땐 대장성을 비롯한 일본정부의 대처능력은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속경제성장을 누릴 때 유능한 것처럼 위장하기는 쉽다.

그러나 난관에 부딪혔을 때 이를 극복하고 진짜 능력을 보여주기는 어렵다.

여타 국가의 정부관료도 일본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특히 한국과 태국정부관료는 더욱 그렇다.

이들 정부관료들은 오래전부터 이같은 경제문제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근본적인 해결방안보다는 미봉책을 쓰기에 급급했다.

통화위기가 닥쳤을 때도 태국정부관리는 고전적인 방법에 의존했다.

더이상 바트화의 추가하락은 없을 것이라고 입으로는 계속 되풀이 했지만
실제로 바트화를 지탱시켜줄 정책적 수단을 제시하는데는 실패했다.

통화폭락사태까지 초래하지 않았지만 말레이시아도 마찬가지다.

적자폭을 줄이기위해 외자도입에 의존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경제정책은
지난 60년대 브라질의 경제기적을 끝장낸 정책과 너무나 흡사하다.

세제혜택과 정책지원을 통해 "비효율적인" 자동차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아시아국가들은 높은 저축률,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 높은 교육열 등을
통해 또다시 경제도약을 시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과거와 같은 고속성장은 절대 기대해서는 안된다.

이미 일부 국가들이 저축, 교육, 노동력 등 경제요소의 상당부분을
소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처럼 여유 인력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도 상당수 있으며
아직 이같은 경제 "현대화" 대열에 참여조차 하지 않고 있는 나라도 대부분
이기때문에 아시아경제가 세계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높을
것으로 보인다.


[[ 약력 ]]

<>74년 미 예일대 졸업
<>77년 MIT대 경제학박사
<>80년 예일대 조교수
<>82-83년 이 대통령 경제자문위원
<>현 MIT대 교수
<>91년 존 베이트 클라크상 수상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