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애들도 잘 아는 다음 두 얘기는 난국에 처한 우리에게 많은 시사가
되고 있다.

두 부자가 나귀를 끌고 여행을 하게 됐다.

이들 두 부자를 본 구경꾼들이 수군댔다.

"타고 다니게 돼 있는 나귀를 바보처럼 끌고가다니..."

이 소리를 듣고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나귀 등에 태웠다.

그러자 구경꾼들이 또 수군대기 시작했다.

"불효자식, 나이든 아버지를 걷게 하다니..."

듣다 못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래도 구경꾼들의 비판은 그치지 않았다.

"무정한 사람... 나이 어린 아들을 걷게 하다니..."

이번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나귀 등에 올라탔다.

구경꾼들이 또 나무랐다.

"힘없는 나귀 등에 두 사람이나 올라타다니..."

이 소리를 들은 두 부자가 할 수 없이 나귀를 나무에 묶어 어깨에 메고
갔다.

잘 알려진 이솝 우화의 한 토막이다.

이번에는 조선초 명정승 황희 얘기다.

송사에 휘말린 두 사람이 황희앞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게 됐다.

한 쪽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 황정승이 "네말이 옳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한 쪽이 섭섭하다며 자기의 억울한 입장을 호소했다.

다 듣고 난 황정승은 "네 말도 옳다"고 했다.

이를 전해들은 황정승의 부인이 "송사를 마무리지으려면 양단간에 결론을
내줘야 하거늘 양쪽 다 옳다고만 하시면 어쩝니까"하고 의문을 제기했다.

남편의 양시론적 태도를 비판하는 부인에게 황정승은 "임자 말씀도 옳소"
라고 응수했다.

양시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삼시론을 펼친 것이다.

우리사회에는 양쪽으로 갈려 갈등을 빚는 문제가 수없이 많다.

한양약분쟁을 위시하여 노와 사의 갈등, 최근들어서는 통화신용정책과
은행감독원을 놓고 벌인 재경원과 한국은행의 밥그릇싸움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해가 상충돼 있는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양측의 갈등이 크면 클수록 이에 대해 과단성있는 결론을 내리고
시론의 물줄기를 한곳으로 몰아주는 기능이야 말로 국정최고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국가 원수가 쥐고 있는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는 이런 때 쓰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양쪽이 골 깊게 갈려 있는 경우 국정최고책임자는 그가 쥔 캐스팅 보트를
과감히 그리고 절도있게 행사해야 하며 일단 캐스팅 보트가 던져진 경우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국민은 이를 따라주어야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김영삼 정부가 여러가지 이분법적 난제에 대처해온
접근방식은 실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현정부가 그동안 취해온 양시 내지 양비론적 태도야말로 요즈음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한 가장 큰 과오였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양쪽 모두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다 양쪽 모두에게 욕을 먹는 과정
에서 무소신과 국정철학 빈곤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갈등을 빚는 문제가 터질 때 마다 현정부가 내놓은 것은 위원회설치가
고작이었다.

교육.노사.금융위원회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들 위원회를 통해 해결책이 찾아졌으면 좋으련만 거의 모든 위원회는
결론없이 양측 갈등만 증폭시켜 놓은게 사실이다.

사회 전반에 흐르는 냉소와 무책임한 비판 또한 국정을 표류시킨 장본인
이었다.

사려깊지 못한 양비론적 구경꾼들의 소리는 정부로 하여금 나귀를 나무에
묶어 어깨에 메고 간 경우가 많았다.

사공이 너무 많아 배를 산으로 올라가게 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지도자의 위대함이나 진가는 갈등구도가 많아야 더
아름다운 빛을 발할 수 있다.

선거에 임한 대처 전 영국수상은 양비.양시적 기회주의를 버리고 노조쪽에
비판적인 자세를 확고히 취했다.

한쪽 지지표를 잃어도 좋다는 태도였다.

대처가 당선된 것은 마음을 비운 자세때문이었다.

미국 선거에서도 표를 가르는 문제들은 이분법적 이슈들이다.

임신중절에 대한 찬반여부, 권총소지에 대한 찬반여부 등 유권자들은 이런
이분법적 이슈에 대한 대통령후보들의 확실한 색깔을 요구한다.

대통령선거가 무르익고 후보들의 TV토론이 잦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분법적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하는 후보는 거의 없다.

앙비.양시적 기회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후보들이 흑.백간에 분명한 입장을 보여주여야 할 이분법적 이슈는 산더미
처럼 많다.

폐기직전까지 몰리고 있는 고속전철사업 지속여부문제, 한은.경찰.검찰
독립여부문제, 전직대통령사면 여부문제, 그린벨트해제 여부문제, 과외전면
금지 여부문제, 빚많은 기업에 대한 손비처리한도제한 여부문제 등 후보들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이분법적 난제들은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랄
지경이다.

''구렁이 담넘어 가는 듯''한 TV토론에 나온 후보들의 화술이 이제는 감탄의
대상이 아니라 감표요인이 돼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기회주의적 양비.양시가 아닌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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