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남미의 여러 나라를 다녀 올 기회가 있었다.

여지껏 책에서만 보아 왔던 찬란한 잉카 마야 아즈텍 등의 고대문명을
꽃피운 그곳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설레였다.

남미의 여러 국가와 민족의 생생한 문화를 접하고 다녀온 후 요근래 내
마음속에 작은 변화가 일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다름아닌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나라 안팎의 크고 작은 일들을 보면서
새삼 "우리 민족과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의구심과 민족과 국가에 대한
생각이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것이다.

민족이란 한민족이 문화적 특징을 바탕으로 오랜 역사를 겪어오는 동안
형성된 것으로 관념 자체가 문화의 소산이라 볼수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 민족 개념은 국가의 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국가의 성립과 함께 국민문화와 국민성이 발달하면서 국민이 바로 민족의
양상을 띠는데 그러나 일부 다민족 국가에서는 국민과 민족이 엄격히 구별
되기도 한다.

남미 여러 나라들의 경우 민족보다는 국가라는 개념이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다민족이라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남미 여러 나라를 다녀온 후 민족의 개념을 새롭게 했다.

이 지구촌에는 1천여 종족이 인류가 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류문화의 동시대에 우리 민족만큼 뚜렷한 이념이나 사상의 바탕
위에 단일민족으로서 국가를 이룬 나라는 극히 드물다.

하나의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적 동질성과
일체감을 갖기에 충분하다.

우리 민족의 정신적 정기인 홍익이념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라는 존재
가치를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기본 철학이다.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나"보다도 "우리"라는 생각을 염두하는 것도
그런 잠재의식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세계화,국제화 속에 민족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우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정신적 구심점의 혼돈과 결핍으로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이 계속
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나보다 우리의 가치를 더욱 소중
하게 다루는 풍토의 조성이라고 생각한다.

또 민족의 역사적 전통에 긍지를 갖고 나아가 미래의 문제에 대해서도
역사적 사명을 갖는 것이 필요한 때다.

우리의 소중한 민족정기로 위기의 오늘을 벗어나 보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