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경제가 어렵다.

각 분야에서 여러가지 처방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교과서식 접근방식에 귀를 기울이라는 얘기가 있다.

근본적인 치료없이는 큰 물줄기를 잡기 어렵다는 뜻에서다.

이같은 맥락에서 한국경제신문은 국내 유수대학의 경영.경제학 교수들을
초청, "한경경영강좌"를 개설했다.

그 첫 강좌로 한양대 예종석 교수의 강좌를 싣는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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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참으로 어렵다.

한보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삼미의 부도소식이 전해지더니
이어서 진로 대농 기아로 그 파문이 급성전염병처럼 번져가고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안타깝고 걱정되기는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진로나
기아는 소비자와 친숙한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그 충격이
피부에 와 닿는다.

진로는 국민주라고 할 수 있는 소주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기업이고 기아는
국민기업을 자처하던 자동차 전문그룹이라는 사실이 더욱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그 외에도 적지 않은 숫자의 기업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3~4대
그룹외에도 안심할 수 없다는 풍문조차 나돌고 있다.

눈을 조금 크게 떠서 우리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경영환경을 살펴보면
현실은 더욱 답답하다.

최근의 언론보도를 보면 우리나라의 수출경쟁력은 금융비용 환율 물가
임금 모든면에서 주요경쟁국인 대만 싱가포르 중국 등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경제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수출경쟁력이 이 지경이니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경제난국을 타개해 나가려는 경제 주체들의 대처방법에 대해서도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우선 정부의 대책이란 것이 너무 미온적이다.

문민정부 초기의 하늘을 찌를 것 같던 기세는 온데간데 없고 정권말기의
권력누수현상 탓인지 소신을 갖고 대책을 세우기 보다는 책임만 모면하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최근의 부도사태에 대한 대책이나 금융개혁문제, 고속철도문제 등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보면 그런 우려를 떨칠 수가 없다.

차기정권을 노리고 군웅할거하고 있는 정치권을 보면 더욱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차기 정부를 책임지겠다는 인사
들의 경제현실에 대한 인식은 딱할 정도의 수준이다.

최근의 TV토론을 지켜보면 물론 표를 의식해서 하는 발언이겠지만 최근의
부도사태에 대해서 기업도 나쁘고 정부도 나쁘다는 식의 양비론을 펼치거나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자는 식의 구체적 대안이 없는 두루뭉실
한 모범답안을 내놓기 일쑤이다.

시련의 당사자인 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위기극복을 위한 공동의 대책을 세우고 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얽혀 부도난 기업의 인수를 위한 물밑 작업에만 열중하고 있다.

최근의 부도사태에 대한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는 방안들도 답답하기는
대동소이하다.

기업도 금융권도, 심지어는 정부도 지금 문제만을 거론하고 있다.

기업은 금융권의 대출금 회수를 원망하며 자금만 조금 풀어주면 회생에는
문제가 없다는 논리이고, 금융권은 이제는 우리 자신이 위험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떻게 자금지원을 더 이상 계속하겠느냐는 입장이며, 정부는
양자간에서 서서 초연한(?) 위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최근의 시련은 우리 경제의 주체 모두가 그 해결
과정을 통해서 반성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교훈이다.

이것은 단순히 자금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경제가 선진국 문턱에 들어서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자금부족은 왜 일어나는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제품이 안팔리기 때문이다.

설사 팔린다고 하더라도 이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팔리는 제품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며, 안팔리는 제품을
팔려다 보니 판매관련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기업의 경영실태는 엉망이다.

작년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는 1조 이상 매출을 올린 기업이 1백6개에
이르고, 그 중에서 10조 이상 매출을 올린 기업만도 7개에 달하지만 그
중에서 1,000억 이상 이익을 낸 기업은 13개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대부분 독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공기업이거나 은행이다.

작년의 실적으로만 본다면 우리 기업의 매출은 평균 15% 증가했으나
순익은 65% 감소했다.

한마디로 경쟁력 상실이다.

우리 기업은 그동안 정부의 보호우산 아래서 안주해왔다.

그러나 전면개방의 시대에 기업이 기댈 곳은 더 이상 없다.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경쟁력은 크게 R&D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으로
나눌 수 있다.

R&D는 물론 대단히 중요한 것이나 그 투자규모나 소요되는 시간이 엄청난
것에 비해 성공의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러나 마케팅은 적은 투자로 상당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특히
단기간에 경쟁력을 제고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다.

최근 일본의 혼다 자동차는 자동차 업계의 세계적 불황에도 불구하고
경이적인 경영성과를 올린 바있다.

매출증대는 물론 작년의 순이익이 무려 11억 달러에 육박했으며 주식
가격도 전년대비 3배나 올랐다.

그 배경에 대해 혼다의 가와모토 회장은 팔리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회사의 경영구조를 마케팅 중심으로 바꿨기 때문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속성을 파악, 매년
신제품을 출시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도 마케팅을 통한 성공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우자동차의 경우 한 때 업계의 3위에서 맴돌던 회사가 최근 레간자,
누비라 등 신제품의 출시로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대우차의 경우 제품 뿐만 아니라 독특한 광고, 새로운 판매방식까지
앞서서 도입하고 있다.

맥주시장에서 하이트의 성공이나 소주의 김삿갓, 곰바우의 히트 또한
마케팅력의 산물이다.

그들은 탁월한 마케팅력으로 월등한 자금력과 영업력을 갖춘 선두기업을
압도하고 있다.

이제 우리 기업은 마케팅으로 경쟁력을 높여야만 한다.

마케팅을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만이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숱한 문제점을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이 신봉해오던 관리중심의 경영으로는 이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마케팅은 결국 고객의 욕구충족을 목표로 하는 소비자지향적 경영철학이다.

마케팅은 소비자와 기업을 잇는 매개체로서 기업에게는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해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소비자에게는 그렇게 생산된 제품을 효율적
으로 전달하여 고객만족을 실현하는 기능을 한다.

요즈음 국내외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고객만족(Customer Satisfaction)
경영은 바로 마케팅 경영을 일컫는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의 마케팅 역량은 매우 한심한 수준이다.

경영자의 마케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전략마인드도 없고 사람을
키우지도 못한 실정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교역국의 반열에 들면서도 세계에 내놓을 만한
변변한 고유 브랜드 하나 없는 것이 그 증거이다.

우리 기업은 아직도 OEM수출의 편안함과 공급부족시대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경영환경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시장의 전면 개방으로 전세계의 경쟁력있는 제품은 모두 우리나라로 몰려
오고 있으며 그 제품과 함께 각종 선진 마케팅기법도 함께 유입되고 있다.

시장개방이래 외국담배와 화장품 등의 진출상황을 살펴보면, 그들의
마케팅 능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산업태의 진출을 통해 우리의 유통환경에도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며 우리의 영세한 중간 상인들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외국 기업의 마케팅 공세에 우리는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는
실정이다.

수출시장에서도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고비용-저효율의 문제점은 그동안
우리 경제를 지켜오던 핵심역량을 앗아가 버렸다.

이제 우리는 내수시장을 개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도, 해외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도 경쟁력을 갖추어야만 한다.

그 지름길이 바로 마케팅이다.

마케팅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경영자들이 관심을 갖고 교육에 투자하여
마케팅 능력을 배양하여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자금 문제에 앞서 우리가 이시점에 생각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마케팅으로 국부를 창출해야 할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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