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배우'' ''한국 최고의 미인'' ''영화계의 여장부''.

58년 데뷔후 20년이상 한국영화계의 간판스타로 군림하다 87년 제작자로
변신한데 이어 93년부터 한국영화인협회 제16대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김지미씨(57).

8백여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대종상(3차례) 등 각종 상을 휩쓸며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여배우로 활약한 그가 이제는 영화계 중진으로 조용하고도 알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그의 모스크바 국립영화대학 명예박사 학위 취득 축하리셉션장에는
각계 인사 수백여명이 참석, 여전한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영화계의 각종 일들 때문에 부쩍 바빠진 그를 서울 동숭동 영화인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여리고 고운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굵고 강단있는 목소리는 ''예쁜
여배우''에 안주하지 않고 오늘의 모습으로 발전한 그의 저력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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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난 사람 = 조정애 < 문화부 기자 > ]


-영화인협회 이사장이 되신지 벌써 2년2개월이나 됐죠.

여배우 최초의 영화인협회 이사장이라는 점에서 각계의 기대가 컸는데요.

협회 이사장으로서 근황은 어떻습니까.

"영화인협회 이사장으로서 치중하는 점은 세가지입니다.

영화인의 사회적 지위를 올리고, 영화인 자신의 직업의식과 자질을 높이는
한편 한국영화의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것이죠.

현재 전국에 17군데 있는 연극영화과 모두 엄청난 인기학과로 부상했고
영화계에는 쟁쟁한 엘리트들이 몰려들어 인재 수준은 첨단산업 못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작 부진으로 이들이 마음껏 꿈을 펴기는 커녕 실업자가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영화인들이 능력을 한껏 발휘하고 20~30년 뒤 "영화계에서 일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협회장 이전에 선배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문예진흥기금의 영화제작 지원금을 올해 편당 2억원에서 3억원으로
올리고 30억원규모의 제작기금 조성을 거의 마무리지었습니다.

선배 영화인을 위한 복지기금도 계획중이고"


-최근 우리 영화계는 갖가지 사건으로 여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홍콩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수입불허 판정을 받았는가 하면 "나쁜
영화"는 우여곡절끝에 어렵게 개봉되구요.

영화계 일각에서는 이것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영화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선 밝히고 싶은 점은 "현재 한국영화의 문제는 표현의 제약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측이나 신세대들은 고리타분하다고 반발할지
모르지만 제 경험에 비춰보면 그렇습니다.

자유당 집권기나 3공화국 시절은 영화에 대한 탄압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
였습니다.

승려 의사 법조인등 특정 직업종사자를 등장시키기만 하면 해당협회의
반발 때문에 제작이 중단되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수작이 많았어요.

비유가 지나친지 모르겠지만 사회주의 시절 구소련이나 동구의 영화도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제약없이 모든 것을 표현해야만 걸작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소수 매니아를 위한 실험영화가 아니라 일반 상영관에 걸릴 대중영화라면
다수의 정서를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작품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특히 영화는 예술성과 오락성의 조화가 중요한
장르입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서는 예술성은 외면받고 오락성만 지나치게 부각되고
있는 듯합니다.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측면뿐 아니라 해외영화제 등 국제교류를 염두에
둬서라도 우리 고유문화를 부각시키거나 보다 심도있는 주제를 선택할
필요가 있어요.

90년대 들어 영화계에 뛰어든 대기업의 활동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많습니다.

젊은 감독과 스타급 배우를 내세운 트렌디물이나 액션영화에만 관심을
가지니까요.

한국영화 제작편수도 급감해 한해 1백40일이상 한국영화를 상영하라는
"스크린쿼터"를 주장하기도 힘든 형편이죠"


-최근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영화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으셨죠.

"제 개인뿐 아니라 한국영화계 전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무척 영광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 학교에서는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지역 전체를 통틀어 최초로 주는
학위였다고 합니다.

8백여편의 출연기록,"명자 아끼꼬 쏘냐"의 러시아 로케 등을 감안해 내린
결정이라고 하더군요"


-95년 이사장 취임과 함께 "지미필름" 운영에서 손을 뗀 걸로 알려졌는데,
평생 영화와 함께 살아오신 만큼 출연이든 제작이든 하지 않을 수는 없을
듯합니다.

"물론이죠.

이사장을 그만두면 바로 영화를 시작할 겁니다.

40여년동안 영화와 함께 살다보니 어느덧 "김지미=영화인"이라는 등식이
성립돼 있더군요.

현재 출연이나 제작을 안해도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치는 저는 영화인인거죠.

연기는 오늘날 저를 있게 한 바탕이고 제작은 자기 생각을 강하게 표출할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있어요.

"티켓" "아메리카 아메리카" "명자 아끼꼬 쏘냐" 등은 모두 강한 사회성을
지녀 애착이 가는 작품들이죠.

앞으로는 우리 고유문화를 소재로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부군이신 이종구박사(65)와 함께 영화관람도 자주 하십니까.

"평생을 의료계에 종사해온 분이라 딱딱하리라 예상했는데 예상외로 문화
전반에 조예가 깊어요.

한달에 1~2편의 영화를 보는 건 물론이고 이박사가 예술의전당 후원회원이라
오페라나 전시회장도 자주 찾아요.

일요일에는 미사를 마친뒤 공연장에 갑니다.

가끔 놀러오는 손녀(중3 중2 5살)들과 노는 것도 재미있어요.

5살짜리 손녀를 업고 집밖에 나서면 딸이 놀라 말리지만 상관없어요"


-미모는 여전하시고 몸매도 20대 못지 않은데 비결이 있으신지요.

"특별한 관리법은 없어요.

91년이후 이박사와 보조를 맞추려 골프를 배웠지만 안한지 6개월이
넘었구요.

타고난 성격이 느긋하지 못해서인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화초에 물주고
청소도 한뒤 일과를 시작하죠.

쉬지 않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게 비결이라면 비결일까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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