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정권을 무너뜨린 박정희 장군은 유수의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들였다.

그들은 이미 "혁명정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낙인찍혀 있었다.

기업 총수들에게 제시한 것은 국가재건을 위한 "기업보국"이었다.

각 분야의 사업을 하나씩 맡아 "도탄에 빠진 민생고"를 해결하고 국가경제
에 이바지하라는 제안이었다.

말이 제안이지 그것은 일방적 요구였다.

박장군이 나누어 준 담배를 피워물 여유도 없이 기업총수들은 "경제재건
명령서"를 들고 돌아갔다.

그리고 1차 2차 3차.5개년계획에 일로매진했다.

바로 이때가 한국경제의 거대한 틀을 결정짓는 순간이었다.

정치권력과 경제세력의 종속관계가 운명지어진 것이다.

은행대출은 당근이 되었고 "부채=성장"의 공식이 풍미했다.

인플레, 특히 토지인플레는 "성장"에 시너지효과를 일으켰다.

이제 빚 많은 자가 크게 되고 부채는 기업에 바로 "효자"인 시대가 되었다.

그로부터 9년뒤 이미 대통령이 된 박정희씨는 경제라는 것이 애국심이나
도덕심으로만 되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많은 기업가들이 은행돈을 떼어먹고 기업을 부실화시키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는 행정력이라는 물리적 힘을 동원하여 이른바 "부실기업 정리대책"을
단행했다.

무기는 금융거래 중단과 세무사찰이었다.

그러나 이 조치를 취하면서도 그는 "시장의 힘"이라는 것을 무시했다.

절대권력을 추구했던 그로서는 아마도 의도적이었을 것이다.

"시장"은 권력자가 보기에는 "혼란"일수 있고 "비능률"일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여개의 문제기업과 기업인을 비질하면서 정부가 발표한 문건은
경제적 분석 아닌 반애국적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규탄으로 작성되었다.

다시 10년이 흘렀다.

경제지표는 과열이다 싶을 정도로 달아올랐다.

이미 박대통령의 카리스마로도 어쩔수 없을 만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부문이 복잡화되고 심화되었다.

더불어 "왜곡된 틀"도 그 자체의 법칙에 따라 뿌리가 깊어졌다.

그가 스스로의 한계를 느낄때 쯤 10.26의 비극이 일어났다.

총은 김재규가 쏘았지만 이미 시대가 그를 거부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정치적 민주화는 그가 사라진 뒤에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신군부에 의해 장악된 정치권력은 국가운영의 틀을 그대로 답습했다.

정변과 오일쇼크에 따른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데 있어 군부정권은 효율적
이었지만 정치권력이 시장을 압도하는 틀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권력이 시장과 기업을 틀어잡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권력으로서는 미리 잘 알아서 "관리"하고 "질서"를 유지하면 실패가
없으리라고 계산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바야흐로 "시장의 시대"가 전개되는 시기가 도래함으로써 계산은
엄청난 착오를 일으킬수 밖에 없었다.

나중 전.노 두 전직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낸 부패 축재 스캔들은 개인적
야심과 탐욕의 결과이기도 했겠지만 권력이 시장을 지배하는 틀에 그 원죄가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한푼 안받겠다고 했는데 아들은 부패스캔들로 감옥에 있다.

그리고 그 스캔들에는 TV방영권을 사고 파는 시장이 등장한다.

시장엔 불가분 돈이 돈다.

아무리 고상한 척 대의명분을 소리높여도 돈은 유혹의 대상이자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 원천을 정치 권력이 쥐고 있는 한, 그리고 그 매혹적인 원천인 시장을
지배하는 문법이 통하는 세계가 있는한 "개혁"은 어렵다.

한보철강을 2조원에 사겠다고 하니 소박한 계산으로 한보태풍 하나만으로도
5조원을 날린 셈이다.

무슨 태풍이 5조원의 피해를 낸적이 있는지 기억에 없다.

지금 기아도 빚쇼크를 일으키고 있다.

이 경제대란을 몰아온 피고는 누구인가.

정태수 아닌 "김태수" "이태수" "박태수"일수도 있다.

그리고 진짜 피고는 경제를 눌러 타고 앉은 권력이며 말로는 문법을
바꾼다고 하면서 온갖 고물을 묻혀 낼수 있는 그 틀을 버리지 못하는
정치권력 집안들의 30년 세습적 의식과 관행이다.

5조원의 수험료를 냈으니 이제 뭔가 배워야 한다.

"부채=성장"이라는 공식이 이젠 틀려먹었다는 것 하나만이라도 안다면
반은 답을 찾은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경영위기는 애국심으로 푸는게 아니라 냉정한 시장법칙으로
풀어야 하는게 충분조건이라는 사실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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