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자금 엑소더스"가 한창이다.

자금이동은 은행내부에서 뿐 아니라 은행과 은행,은행과 타금융기관
사이에 활발히 오가고 있다.

촉매제는 단기예금상품을 대상으로한 4단계 금리 자유화.은행권에서
하루만 맡겨도 높은 이자를 주는 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예금 (MMDA)이
쏟아지면서 뭉칫돈을 빨아들이고 있다.

<> 빗나간 초기 전망

= 자유화 초기 자금이동은 그리 많지 않을 거란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금리 자유화가 갖는 "양날의 칼"을 염두에 둔 탓이었다.

수시입출금식 예금규모가 2조원에서 7조원에 달하는 대형 은행들로서는
금리를 그냥 올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1% 포인트만 올려도 2백억원에서 7백억원의 이자부담이 생겨 경영압박
요인으로 이어지기 때문.

따라서 수신기반을 넓히려는 후발은행들을 제외하면 큰 매력이 없을
것이란 주장이었다.

MMDA에 지급준비금 (5%) 부담이 있다는 점도 MMDA의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대우경제연구소가 4단계 금리자유화 직후 "MMDA의 이자 수준은 3~7%선이
될 것이므로 종금사의 어음관리계좌 (CMA)나 투신사의 자금시장펀드
(MMF)와는 경쟁이 안될 것"이라는 자료를 내놓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 인기 모으는 MMDA

= 지난 7월12일 은행 가운데선 처음으로 "맞춤자유예금"이란 MMDA
상품을 내놓은 장기신용은행은 14일까지 92억원어치를 판매했다.

다른 상품과 비교하면 월등한 실적이었다.

한미은행도 "스코어플러스통장" 판매를 시작한 14일 하룻만에 3백76억원을
거둬들였다.

이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금리부담 때문에 눈치를 보던 다른
은행들도 서로 질세라 MMDA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최고 10.7%까지 주는 상품도 나왔고 금리를 재차 인상해 적용하는
은행들도 생겨났다.

후발은행들이 하도 공격적으로 나오다 보니까 시중은행들도 수신기반이
취약해질까 두려워 단기 고수익 상품에 본격 참여하고 있다.

MMDA상품을 내놓은 9개 은행들이 지난 28일까지 판매한 실적은 모두
1조4천1백82억원어치.

유치된 자금규모를 생각하면 뛰어들 만한 매력을 가진다.

<> 어떤 자금이 어디로 움직이나

= 4단계 금리자유화로 자금이동이 촉발된 것은 분명하다.

어디서 얼마만큼이 움직였는지는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적인 윤곽은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금융권별 여수신 동향을 보면 지난 7월24일 현재
은행권의 요구불 예금은 지난해보다 1조7천7백70억원이 줄었다.

반면 저축성예금은 4조1천3백68억원이 늘었다.

같은 은행내의 요구불예금이 저축성예금으로,또는 MMDA를 팔고 있는
다른 은행으로 이동됐다고 점쳐볼 수 있다.

종금사의 CMA (어음관리계좌) 예탁금은 전년동기대비 2천9백75억원이
줄었다.

이에비해 투신권의 경우 자금시장펀드가 1조4천4백90억원어치가 증가하는
등 공사채형 상품은 4조2백35억원이 늘었다.

결국 제2금융권내에서도 자금이동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셈이다.

종금사 관계자는 "후발은행들이 높은 금리로 치고 나오는 상황에서
기아사태로 부실대출이 될 위험성까지 겹쳐 그동안 만기를 계속 연장해오던
고객들도 돈을 찾아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신용은행 고객지원부 이선호부장은 "MMDA에 관한 정보가 확산되면서
자금이동도 계속 이뤄질 것"이라며 "이자는 높지만 계좌이체나 자동이체
등의 기능이 없어 이용이 불편한 투신사 상품들과 비교할 경우 은행으로
자금이 올 공산이 크다"는 낙관론을 펴고 있다.

MMDA상품을 초기에 내놓은 한미은행측은 유입자금의 70~80%가 다른
기관에서 들어 오는 것이고 나머지가 기존 저축성 예금에서 전환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대우경제연구소 정유신 연구위원은 "결제시스템을 보완해 투신 증권과
연계하거나 이용편의등 부대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은행권이 제2금융권
공략에 나설 것"이라며 "따라서 자금이탈을 막기위한 금융기관간의 상품
경쟁이 본격화, 금융구조 개편을 앞당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박기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