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지만 과학은 퇴행없이 발전만 함으로써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한다.

1백만분의 1이라는 극히 미세한 세계에 인간의 눈길이 미치고 화성과 목성
등 무한한 우주의 세계에도 발길이 디뎌졌다.

20세기에 들어 찬란하게 꽃핀 의학도 낳고 싶은 성을 골라 아기를 갖고
인공수정 체외수정을 거쳐 복제인간까지 생산(?)토록 함으로써 생태계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남아선호사상이 남다른 우리나라에서는 남녀성비 파괴에 사이비의학이
동조, 초등학교생의 짝이 없고 신부감의 절대부족으로 강요된 독신이 늘고
있는 형편이다.

법과 제도로 막고 의사윤리가 강조돼도 성비파괴의 골은 깊어만 간다.

현재 남자 1백13명에 여자 1백명꼴인데 10년뒤엔 1백23대 1백이 될 지경에
이르렀다니 이대로 나가다가는 그야말로 남성천국이 될 전망이다.

요즘엔 딸이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사위를 얻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고
아들 낳은 부모는 기차 타고 딸 가진 사람은 비행기를 탄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현실을 애써 외면, 아들낳기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발전된 의학의 역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아들 가려 낳기의 시초는 사실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했다.

임신중 태아의 기형 여부를 간단히 알아보는 방법이 태아단백검사(AFT)나
양수검사인데 이 방법으로 남녀 성감별을 할 수 있다는 데서 문제가 생겨난
셈이다.

기형이 아니면 일단 안심한 뒤 기왕이면 딸인지 아들인지 알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남아선호사상과 부도덕한 일부 의료진이 야합해 임신중절을
일으키고 그 결과 남녀성비가 깨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 드는 돈도 만만치 않다.

양수검사에 50만원이상, 중절수술비 20만~30만원, 후유증예방비도
10만원이 넘는다.

한국보건연구원이 밝힌 통계에 따르면 한해 양수검사가 6만건이 넘는다고
한다.

제발 순수하게 기형여부만 알고 성감별은 원하지도 말고 해주지도
말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