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가 울먹이면서 돌아가자 지영웅은 자기가 너무 냉정하게 대한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생전 처음 그는 사랑하는 영신에게 떳떳하게 대할 수 있어서
기분이 아주 날아갈듯 했다.

그는 그렇게 물리적인 남자다.

완벽한 섹스가 안 된 것이 그를 이렇게 떳떳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는 일곱시반에 약속이 되어 있는 레이디가 누구인지도 챙겨보지 않고
연습장으로 성큼 들어선다.

아뿔싸, 거기에는 권옥경이가 당당하게 서 있는게 아닌가? 권옥경은
언제나 그렇게 당당하고 쾌활한 여자였다.

아디다스의 연습복이 돋보이는 멋쟁이, 그녀는 언제나 신선하다.

"놀랐지? 삐삐 아무리 쳐도 대답이 없잖아. 그래서 이렇게 습격한 거야.
자기 왜 어젯밤 못 잤어? 눈이 부었는데?"

"오랜만이오, 누님"

비엠더블류를 준 문제의 여주인이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지난 달에는 해외여행 다녀왔다면서? 여기 배사장이 그러더군. 얼굴도
타고. 애인이 생겼나봐?"

그녀는 꿰뚫는 시선으로 미소한다.

지영웅은 입을 꾹 다물고 골프채를 한번 휘둘러본다.

"골프 연습하러 온 것은 아닌것 같군요"

지코치가 생경스럽게 군다.

"지코치, 자기 애인 생겼어?"

"그래 보입니까?"

"골프투어 같이 갔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맞히시나?"

지코치가 약간 냉소적으로 나온다.

권옥경은 그가 잘 난 체를 하는 것 같아서 비위가 틀렸다.

언젠가 그가 골프투어에 데려가 달라고 했을 때 권옥경이 거절한 적이
있었다.

"오늘 몇시쯤 시간낼 수 있어?"

"나 같은 것 잊으신 줄 알았는데, 새삼스레 나타나셨네요 여사님"

지영웅의 태도가 영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뭘 믿고 비엠더블류 700시리즈를 선사한 권옥경이를 마다하는 거야.

그녀는 언제나 건방졌다.

그에게는 그 건방진 태도마저도 좋게 보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는 도저히 영신이 같이 마음에 드는 여자를 두고 다른 여자와
러브메이킹을 할 수 없다.

사랑 자체를 안 하면서 무슨 육체적 행위를 한단 말인가?

그는 이제 다시는 돈을 위해서 몸을 파는 짓은 안 하리라고 결심하지
않았는가?

권옥경이가 기분상해 하면서, "지나간 날의 사랑을 잊은 것이라면 나도
이제 다른 애인을 사귀어야겠군요 코치님"

그렇게 말하면 그가 무서워할 것이라고 트릭을 쓴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남자는 끄떡도 않는다.

"오늘 나하고 약속해 줄 수 없다구?"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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