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여기 오면 안 돼. 더구나 내가 초대한 여자는 나의 애인
뿐이니까 제발 예의를 지켜줘"

지영웅은 애원하는 모습으로 그녀를 도어쪽으로 몰고 간다.

"아침이면 가끔 내 애인이 습격을 올 때가 있어. 물론 맛있는 아침을
싸들고서 오는 거야"

그는 거짓말을 한다.

몽상속의 따뜻한 사랑의 풍경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골프를 칠때 이외에는 늘 몽상가였다.

"미안해요 오빠. 오빠도 우리 어머니의 이름을 알아요?"

"아니, 나는 멀쩡하니까 정신병같은 면담은 안 다니지. 같은 압구정동에
산다면 간판 정도는 봤겠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큰일 나게"

그는 자기가 공박사에게 가서 편두통을 호소하고 백옥자에게 버림받았을
때의 처절했던 일을 기억하며 웃는다.

아니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김영신의 덕이다.

"이봐, 다시는 여기 오지마. 다시 오면 나는 이 오피스텔에서 떠날
거야. 미국으로 가버린다구"

그는 거짓말을 사실처럼 자꾸 윤색한다.

그러나 전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신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는 우직한 사나이다.

미아는 있는대로 풀이 죽어서 도어를 등지고 서 있다.

그녀는 자기가 건강하고 완전한 여자임을 그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

그러나 지영웅은 그녀를 거절한다.

무난하게 첫번 경험에 성공했다면 아마도 오빠는 자기를 선택했을 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여자의 처녀성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들었다.

그러나 자기는 그 첫번째 기회를 재수없이 망쳐버렸다.

그녀는 훌쩍거리면서 다시 울기 시작한다.

"미아 제발, 나는 일곱시부터 제자를 연습시켜야 돼. 제발 울지 말고
웃는 얼굴로 돌아가줘"

"오빠는 골프 코치지요?"

"왜 이젠 골프를 배우겠다고 떼를 쓸테야?"

지영웅은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처녀를 잃고 우는 여자는 있지만 처녀를 지켜서 우는 여자는 아마
없을 거야. 너는 바보도 병신도 비정상도 아니야. 다만 나하고 안 맞을
뿐이다"

지코치는 안심스러운 얼굴이고 미아는 결코 이 잘 생긴 오빠를
단념할 수가 없다.

육체의 경험들은 낯설고 무시무시하기까지 했지만 이제 다시는 오빠를
못 만날 생각을 하니 기가 탁 막힌다.

노력하면 될 것 같은데 지영웅은 별로 애를 써주지 않았다.

"오빠, 정말 다시는 나를 안 만나줄 거야?"

"다시 만날 이유가 없지"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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