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웅 <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원장 >

작금의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

연이은 대기업의 부도 사태로 한국 경제가 그대로 좌초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더구나 실물부문의 부실이 금융부문으로 확산되는 복합불황의 가능성이
높아 더욱 불안하다.

지금의 경제상황은 바로 비상사태인 것이다.

현 상황을 비상사태라고 일컫는 첫째 이유는 우리가 당면한 경제문제들이
시장원리만으로는 잘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부도 가능성이 높은 대기업이 많아서가 아니라, 시장원리의 작동을
위한 전제조건이 충족되고 있지 않은데 그 원인이 있다.

금융 시장의 불안으로 견실한 기업조차 부도 가능성이 높고, 부실 기업이
퇴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확립되어 있지 않다.

둘째는 제조업 부문의 위기가 금융부문으로 연결되어 국민경제 전체가
침체되고 성장잠재력 기반이 무너질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셋째는 국내경제의 위기상황으로 한국경제에 대한 국제 신인도가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은 개방 경제에서 대외 신인도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대외 신인도가 하락하면 해외 자금조달이 어렵고 해외 금융에 대한 금융
비용이 상승하고 수출선을 불안케 하여 국내 경제불안이나 외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넷째는 정권교체기에 따르는 "행정의 공백", 또는 "정책의 공백"을 지적할
수 있다.

불황의 골이 깊고 대기업 부도가 거듭되었지만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정책
처방은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했다.

우리 경제의 취약점의 하나는 경제주체의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하고,
경제 시스템 내부의 충격흡수 장치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개별 기업의 부도와 같은 조그만 충격도 이를 수습하는데 너무도 많은
비용이 든다.

이를테면 유동성 부족과 또는 잘못된 금융관행으로 인해 금융시장이
조금만 경색되어도 기업의 연쇄부도를 낳는다.

우리경제 내부에는 방화벽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한 곳에 불이 붙으면
경제전체에 파급되기 쉽고 책임전가의 명분론 때문에 곧잘 진화시기를 놓쳐
화를 더 크게 한다.

지금 상황은 비상시기로서 시장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시장 실패"의
경우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유시장 원리를 신봉하더라도 난국타개의 주된 역할을
기업이나 시장에만 맡길 수 없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칫 "권력의 공백"이 "정책의 공백"으로
이어지면 경기회복은 커녕 국가경제 전체가 표류할지도 모른다.

경제적 비상국면에서는 정부가 앞장서서 위기탈출의 물꼬를 터줘야 한다.

그러면 위기극복을 위한 정책과제는 무엇인가.

우선 기업의 연쇄부도 사슬을 끊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기업의 도산을 방지해야 한다.

충실한 자구노력을 기울이는 기업은 회생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예컨대 기업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부동산을 매각하려 하여도 마땅한
매입자가 없다면, 성업공사나 토지개발공사가 부동산 매입을 위해 저리의
공채라도 발행하여 기업이나 채권은행에 인수시키고 기업과 채권은행은 그
공채를 한국은행으로부터 재할인받아 채무를 해결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둘째는 제조업의 부실이 금융불안으로 연결되고 나아가 복합불황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이다.

필요하면 중앙은행의 특별 융자를 허용하여 채권은행의 단기유동성이
부족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채권은행의 대출을 출자 형태나 주식 전환사채로 전환하는 것을 적극
허용하여 추후 제3자에 의한 부실기업 인수를 용이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의 직접금융이 용이하도록 기업공개나 유상증자와 관련한
규제를 철폐하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는 대외 신인도의 하락을 막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정부의 위기 관리 능력을 보임으로써 신뢰도를 떨어뜨리지
말아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외국인 직접 투자의 적극적인 유치가 바람직한
해법의 하나이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자금확보나 기술이전, 그리고 대외 신인도제고의
측면에서 좋은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의 유치를 위해서는 외환관리법을 조기 폐지하는 것과
같은 규제완화가 필요할 것이다.

끝으로 재무구조개선 생산성향상 사업구조조정과 같은 기업의 구조조정
노력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의 노력도 시장경제 원리와 산업구조 조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

참으로 오늘의 경제계는 어느 때보다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 상황에서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가 확고한 난국타개 의지와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복합불황의 불안감을 제거하고 대외신인도의
하락을 막는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