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노사분규를 주도해온 대형 강성사업장들이 잇따라 임단협상을
끝냄에 따라 올해 노사협상은 예년에 비해 일찍 마무리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국내 노동계의 쌍두마차격인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의 노사협상이
지난 24일 타결됨으로써 중점지도 사업장으로 분류된 22개 사업장 가운데
13개 사업장이 임단협을 끝냈으며 나머지 사업장들도 대부분 이달말까지
협상을 타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노조설립 10년만에 처음으로 파업결의나 쟁의발생신고
없이 임금협상을 끝냈다고 하니 요즘 사업장의 분위기를 짐작할 만하다.

특히 기아그룹이 경영위기에 처한뒤 고통분담에 동참하는 노조가 크게
늘어 하루평균 10여개 사업장에서 임금동결을 선언하고 있으며 올들어
지금까지 모두 6백38개 업체가 노사합의아래 임금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는
것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들을수 없었던 소식이다.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25일 현재 파업등 쟁의행위 참가자는 3만7천3백40명
으로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40.5%가 감소했으며 근로손실일수도 69.1%나
줄어든 19만1천2백96일에 그쳤다고 하니 듣던중 반가운 소식이 아닐수 없다.

사실 이달초 민주노총이 3단계 총파업을 선언했을 때만 해도 노사분규의
재연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았었다.

그러나 서울~부산지하철과 한국통신등 1단계 총파업에 참여키로 했던
대형 공공사업장들이 파업결의상태에서 무분규로 협상을 마무리했고, 2단계
총파업을 벌이기로 했던 병원노련 등도 잇따라 협상을 타결해 민주노총의
총파업계획은 빗나가고 말았다.

올해 노동현장이 이처럼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새노동법 시행으로
노사협상이 화합적인 측면으로 흐른데다 경기침체에 따른 대기업의
부도사태와 고용불안 등으로 교섭환경이 노조측에 매우 불리하게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어쨌거나 교섭기간이 단축되고 일부 극소수 사업장을 제외하곤 불법파업이
전혀 발생하지 않은데다 생산시설 점거농성 등 악성 쟁의행위가 사라져
공권력투입 사업장이 한 곳도 없었다는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을 새로운 선진국형 노사문화의 정착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아직도 우리 노동계에는 기회만 있으면 노동운동을 정치투쟁이나
사회개혁투쟁으로 변모시키려 하고 있는 세력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은 지금 우리사회에 만연한 대통령선거 분위기를 이용해 노조를
정치세력화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 세력이 더 늦기 전에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노선으로 복귀하길
권한다.

조합원 다수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강경투쟁을 더이상 설땅이
없음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새로운 시대의 물결에 따라 노사관계의 패러다임도 변해야 할 시점에서
모처럼 움튼 생산적 노사관계의 싹을 잘키워 튼튼한 뿌리를 내리게 하는
일이 노-사-정 모두에게 맡겨진 책무임을 잊지말아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