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TV가 대통령선거의 운명을 가른 것은 지난 60년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과 민주당의 존 F 케네디가 TV토론에서 맞붙었을 때였다.

닉슨은 토론내용에서 케네디를 앞도했지만 "탤런트"로서는 케네디의
적수가 되지 못해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다.

그러나 닉슨은 8년뒤 바로 그 TV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번에는 자신의 이미지를 출세욕이 강한 모진 정치인에서 법과 질서를
회복해 베트남전쟁의 흙탕속에서 미국을 구출할 인물로 바꾸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미지선거" "TV선거"라는 말을 만들어낸 이 새로운 시대의 도래는
선거운동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켜 전통적인 정치보스의 후퇴를 촉진시켰다는
점에서 선거의 근대화에 한 몫을 했다고 할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선거기술의 과학화는 국민의 불만이나 요망을
정확히 파악, 후보자로 하여금 올바르고 신속하게 대응할수 있게 해주며
일반에게 선거를 알기쉽고 친근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같은 뉴폴리틱스의 전개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도전이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미국의 경험에서 보듯이 후보들의 성패를 가름하는 것은 후보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각본과 분장과 연출을 도맡는 이른바 "핸들러"들이다.

그래서 TV토론장에 나선 후보자는 꼭두각시라는 심한 표현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TV토론을 미인콘테스트, TV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을
탤런트대통령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15대 대통령선거가 TV에 의해 지배되는 사상최초의
미디어선거가 될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이미 TV토론은 신한국당 후보경선과정에서 그 위력이 입증됐다.

하지만 미디어선거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철저한 형식과 내용이
공정하고 충실해야 하며 이미지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쟁점을 부각시켜
보들간의 명실상부한 토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오늘부터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가 탤런트대통령의 당선을 막기위해
"미디어 바로보기"운동을 펼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지연이나 혈연 학연 등에 의존하는 전근대적 선거도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기이한 옷차람 몸짓 등으로 반짝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처럼 유권자의 감각적
판단에만 의존한 탤런트대통령이 나온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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