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진뒤 부실공사 관련기사가 신문지면을
메울때 때마침 광화문 근처에 대형빌딩을 짓고 있던 한 재일교포 건설업자가
"한국의 건설공사현장은 범죄현장"이라고 일갈한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기술이 모자라서 아니면 실수로 공사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공사의
발주단계에서 부터 설계 시공 감리에 이르기까지 담합 뇌물 졸속등 온갖
비리가 판을 친 결과라는 통렬한 지적이다.

간혹 비리를 외면하는 양심적인 업체는 고립돼 도태될 수밖에 없으며
현장사정에 밝은 시공전문가들은 감리를 철저히 하려면 조직깡패의 협박에
대항해 목숨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감리만큼은 외국업체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사정이 이러니 공무원 건설업체 자재납품업체 등이 인허가및 하청과정을
통해 복잡하게 얽힌 총체적 비리구조를 놔둔체 구호로만 "완벽시공"을
외치는 것은 눈감고 아웅하는 낯뜨거운 일이며 언제 다시 부실공사로
인한 대형사고가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같은 위험은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23일 개통된지 20일밖에 안된 안양시 박달 우회고가도로의
교각이 갈라져 경수산업도로가 완전히 마비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불행중 다행으로 그곳을 지나던 한 트럭운전사가 균열현장을 발견하고
신고해 사고는 예방할수 있었지만 자칫 대형참사가 일어날뻔 한것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할 지경이다.

특히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붕괴로 성실시공이 강조되던 시기에 이같은
부실공사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우리가 느끼는 분노는 더욱 크다.

하지만 건설교통부와 한국고속철도공단이 경부고속철도공사의 부실시공
조사보고를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증언앞에서 우리는 차라리 할말을 잃게
된다.

안양 고가도로 균열이 과거의 부실결과라면 부실공사 축소은폐가 문제된
경부고속철도공사는 현재 진행중이며 대형 국책사업이라 문제가 더욱
심각하기 때문이다.

김한종 전임 고속철도공단 이사장의 증언에 따르면 부실공사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본인과 안전진단을 맡은 WJE사에 온갖 협박과 위협이
있었다고 한다.

증언의 신빙성은 수사당국에서 철저히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과거의
경험으로 볼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전에 있었던 한국고속철도공단 이사장의 전격 경질을
두고 의혹에 찬 눈길이 적지않았던 터에 만약 이같은 증언내용이 사실이라면
관련 공무원과 시공업체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해야 함은 물론이다.

뿐만아니라 이번 기회에 경부고속철도 공사를 전면 취소하고 물류난을
해소하기 위한 다른 대안을 찾는 일도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공사에 얽힌 건설업체의 이해관계가 크고 대외적인 신뢰문제도 있어 쉬운
결정은 아니겠지만 공사발주의혹, 지형적인 한계, 취약한 경제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어물쩡 넘어갈 일은 아니다.

우리경제의 위기의식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국정을 책임진 최고책임자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