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직선 기선을 바탕으로 영해를 새로 설정하고 그 안에 들어간 우리
어선들을 붙잡아간 사건은 그리 큰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일이 점점 꼬여가는 데다가 풀릴 가망이 작아서, 적잖이
걱정스럽다.

한국어선 납치 사건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우리 정부가 그 일을
감췄다는 사실이다.

정부로선 한-일 정상회담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걱정했다는 얘기고,
김영삼 대통령으로선 그 회담을 외교적 성과로 내놓고 싶어했으리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지만, 속이 무척 쓰리다.

자신의 조그만 정치적 이득때문에, 대통령이 외국에 붙잡혀간 국민들을
구해내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붙잡혀갔다는 사실조차 숨기다니.

하긴 김대통령은 집권한 뒤 단 한 번도 북한에 붙잡혀 간 어부들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남북한 정상회담을 간절히 바라는 터라, 그 얘기를 꺼린 것이리라.

지난번 방미때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을 억지로 이루어 "구걸 외교"라는
평을 받은 것도 그렇다.

그 회담으로 그의 정치적 자산은 좀 늘어났을지 몰라도, 우리는 미국에게
빚을 졌고, 그 빚은 통상이나 대북한 정책에서의 양보로 갚아질 것이다.

역사와 이해 관계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일본 사이는 좋을 때라도
어색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 한-일 영해문제엔 독도 문제가 들어있고, 독도 문제에서의
양보는 우리나 일본이나 해당 정권의 정치적 자살을 뜻하므로, 시원한
해결책은 없다.

사정이 그렇긴 해도, 김정권이 들어선 뒤에 양국 관계가 아주 나빠졌다는
사실이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분명하다.

일본의 태도에선 우리 정부의 체면이나 처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대책다운 대책을 못 내놓는다는 점도 눈에 아프게 들어온다.

실은 그것은 독도 분쟁에서 예견되었던 일이다.

일본의 자그마한 도발에 우리 정부는 함대를 보내 무력 시위를 했다.

외교에서 무력 시위는 마지막 패다.

그 패를 미리 썼으니, 이제 무슨 패를 써도, 대응이 미흡하다는 느낌을
줄 수 밖에 없다.

걱정스럽게도, 우리는 일본과만 사이가 나빠진 것이 아니다.

김정권이 들어선 뒤 우리는 둘레의 나라들과, 우방이든 적국이든, 모두
사이가 소원해 졌다.

오직 중국과의 관계만 그런대로 유지되어 왔고 그런 사정 때문에 우리
정부의 중국에 대한 태도는 아주 비굴하다.

큰 나라들로 둘러싸인 조그만 나라로선, 그것도 아주 전제적이고 공격적인
나라와 대결하는 처지에선, 주권 국가에 걸맞는 외교를 펴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런 처지에서도 합리적 외교 정책은 찾을 수 있다.

몽고가 고려를 침입했을 때, 집권자인 최우는 수도를 강화로 옮기려 했다.

그것은 집권자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고 인민들을 적군 앞에 내버리는
짓이었지만, 최우의 위세때문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오직 유승단이 외교적 해결을 주장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김은 이치에 맞는 일이다.

예의로써 섬기고 믿음으로써 사귀면, 저들 역시 무슨 명분으로 매양
우리를 괴롭히겠는가"

사정없이 짓밟는 몽고 군대에도 합리적 외교를 펴야 한다는 주장은
감탄스럽다.

그런 지혜에서 조선조의 현실적인 "사대교린"정책이 나온 것이다.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크게 달라서, 작은 나라도 어려운 대로나마
지나치게 비굴하지 않은 외교를 펼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을 예의로써 대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믿음을 갖도록 행동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김정권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늘 완곡한 언사를 써야 하는 외교에서 대통령이 막말을 하고 일본의
조그만 자극에 무력시위를 해서, 일본 정부를 거센 민족주의 세력의 비판
속으로 내몬 것은 예의가 아니다.

일본 수상과의 회담을 성사시키고 홍보 효과를 크게 하려고, 우리
어부들이 붙잡혀간 것을 감춘 일은 일본이 우리에게 믿음을 갖도록 하는
태도가 아니다.

개인적 이득을 위해서 국민의 안위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에게, 그리고
그런 사정을 정치 지도자로 가진 나라에게, 누가 믿음을 지닐 것인가.

이 얘기는 물론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북한에 적지 않은 자원을 원조하면서도, 정상회담에만 마음을 쏟아,
붙잡혀간 우리 어부들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는 우리 정치 지도자를, 그리고
그런 사람이 살림을 맡은 우리 나라를, 어떻게 북한이 어렵게 여기겠는가.

국군 포로들이 아직도 북한에 살아있다는 얘기가 나와도 남의 얘기로 듣는
나라를 반세기 뒤에도 전사자들이 유골을 찾으려고 얘쓰는 미국이 어떻게
보겠는가.

우리는 일본의 부당한 행동과 무례한 태도를 준엄하게 지적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사태가 이렇게 악과된 것을 반구해야 한다.

외교는 예의와 믿음이라는 선현의 얘기를 새삼 새겨야, 우리는 현재의
외교적 난국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 북한의 참상이 날마다 보도되고 구호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그러나 그 생지옥으로 붙잡혀간 우리 어부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주민들이 풀뿌리를 먹는다면, 붙잡혀간 어부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남북 정상회담이 임기 안에 열린 가망이 없어진 지금, 김대통령은
북한으로 붙잡혀간 어부들에 대해서 뒤늦게나마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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