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가을 한 여고 체육관에서 봄처럼 싱싱하고 용수철같이 탄력있는
사람들이 모여 "스프링"이라는 농구 동아리를 만들었다.

비록 거대한 산처럼 밀려오는 세월의 파도를 이기지 못해 예전의
탄력성은 잃었으나 농구에 대한 열의와 마음만은 봄처럼 싱싱한 나도
그 자리에 참석하였다.

당시 57명으로 시작한 회원수가 지금은 어느덧 백여명이 되었고 동아리
설립에 앞장섰던 패기만만하던 젊은 사원들도 이제는 어엿한 과장, 대리가
되었고, 이제는 신세대 사원들에 밀려 벤치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여전히 "스프링"은 남녀와 세대를 초월할 수 있는 화합의
장으로써 한덕가족 누구에게나 문호가 개방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구부 회원이라고 하면 회원이라는 사실 하나만
으로도 농구를 잘 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회원들은 그저 농구가 좋아서 들어왔을뿐 농구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신체적 키는 작지만 정신적 키는 그 누구보다도 큰 소비자 보호실의
정진원씨.

"저는 농구를 잘 못합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농구회를 선택한 유일한
이유입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무슨 일이든 해낼수 있는 젊은 사원의
자신감을 느낄수 있었다.

내게 있어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매주 일요일
젊은 사원들과 함께 어울려 땀흘리며 농구를 하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나또한 젊어지는 느낌이 든다.

흘러내리는 땀방울 속에서 우리는 세대를 초월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사님, 음료수 좀 드시죠"

항상 싱글벙글 표정으로 웃는 경영기획부의 배용호씨.

근심이라곤 전혀없을 것 같은 그의 환한 얼굴을 보면 쌓였던 피로는
어느새 눈녹듯 사라지고 만다.

연습을 통해 다져진 실력을 가늠해 보기 위해 1년에 한번씩 동업사 농구
동아리와도 친선경기를 갖는데 우리는 이 경기를 통해 동업사간 친목을
도모하고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동업사 친선농구경기는 94년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올 6월8일에는
4개팀이 참가한 가운데 3회 대회를 가졌다.

매주 꾸준한 연습을 통해 실력이 향상된 결과인지는 몰라도 3시간이 넘는
열전 속에서 우리는 전승으로 우승을 하였다.

의욕만 가지고는 젊은 사원들을 이길수 없어 벤치신세로 밀려나긴 했으나
마음만은 경기내내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늦은 오후 봄향기 가득한 체육관에서 경기가 끝난후 들이키는 막걸리
한 사발은 세상의 어 어떤 산해진미보다 달콤하게 느껴졌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