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을 가진 민족"

외국언론들은 올림픽때마다 한국 사람들을 이렇게 부른다.

양궁에 관한한 한국선수들을 따라갈 나라가 없다.

금 은 동메달을 독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신의 손이라는 칭호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신의 손"은 양궁에서만 증명되는 건 아니다.

지난 15일 김포국제공항.

신의 손을 가진 한국인들이 무더기로 입국했다.

제34회 국제 기능올림픽에 참가했던 한국 선수단이 귀국한 것.

이들이 가져온 선물은 종합우승.

지난 33회 대회에 이어 2연패다.

지난 67년 첫 참가후 11번째 세계제패다.

이번 대회에 걸린 금메달은 모두 35개.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울린 것은 10번(자동제어는 2인1조).

아깝게 금메달을 놓친 은메달과 동메달은 각각 3개와 4개다.

2위인 개최국 스위스는 금메달 8개.

한마디로 한국의 압승이다.

한국인의 손은 이렇듯 세계 최고다.

특히 기능올림픽에서의 우승이 갖는 의미는 크다.

단지 손재주가 우수하다는 것을 과시한 게 아니다.

경쟁력의 기본 바탕인 우수한 맨 파워집단이라는 게 증명돼서다.

한국의 손끝 기술.

세계를 무려 11번이나 제패한 막강 파워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선 이같은 능력이 무시되고 있다.

기능인이라는 단어에는 여전히 낮은 신분이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게
사실이다.

사회적 대우도 낮다.

그래서 이번 종합우승은 더 빛난다.

사실 한국에서 기능인으로 대접받기는 어렵다.

기능이라는 것 자체가 단순노동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직 개발연대의 단순노동자들이나 하는 일쯤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도
많다.

금형이나 기계조립 배관 등은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특히 컴퓨터등 첨단산업의 등장으로 땀흘리는 현장 노동은 "한물 간"
것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산업을 지탱하는 것은 땀의 노동이다.

컴퓨터등 첨단산업이 아닌 현장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재래산업임에
분명하다.

첨단산업이 소프트웨어라면 재래산업은 하드웨어다.

하드웨어 없는 소프트웨어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한국의 기능인들은 두 명의 적과 싸운다.

하나는 세계 최고의 기술습득이다.

또 다른 하나는 편견과의 투쟁이다.

그래서 이들은 언제나 외롭다.

물론 국제 기능대회 입상자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은 있다.

금메달 수상자에겐 동탑산업훈장이 주어진다.

일시불로 1천2백만원의 상금을 받고 연금도 나온다.

대학을 갈때는 학자금이 면제된다.

그러나 이같은 물질적인 보상보다도 더 필요한 것은 명예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해도 알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막노동 대회에서 일등한 게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지난 80년대 기능올림픽대회에서 우승했던 한 기능인의 말이다.

"한국사회에서의 기능인 천시는 아주 못된 고질병입니다.

하다못해 누드모델도 세계 정상급이라면 그 나름대로 인정해주면서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도 여전히 노가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어요"
(김재석 산업인력관리공단 이사장).

뿌리 깊은 노동천시의 관념을 떨쳐버리는 게 시급하다는 얘기다.

신의 손으로 칭송받는 한국의 손끝 기술.

머리카락 한올이 통과할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장인들의 땀.

이 땀이야 말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에너지다.

그 에너지를 계속 발생시키지 않으면 한국의 경제는 용에서 지렁이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은 기능인들이 우리사회를 이끌어 가는 힘의 원천으로
대우받는 데서 발원할 게 틀림없다.

< 조주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