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의 바탕은 깊지 못하고 얕다고 한다.

줄곧 문화민족이라고 자부해온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뿌리가 깊지 않으면 그 나무는 바람에 더 크게 흔들린다.

우리는 이리 저리 얼마나 흔들려 왔는가.

뿌리를 깊게 내리려면 각고의 노력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려운 일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인구가 결코 적지않은 나라에서, 그리고 잠재적 실업자가 많은 나라에서,
또한 경제가 아직은 고도화되지 못한 형편에서 3D업종을 싫어하여 외국인
근로자를 대규모로 쓰고 있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그렇다고 전문화된 것도 아니다.

한국에는 세계 최고가 많다.

우선 신문보급률이 세계 정상급이다.

서방 7개국의 인구 1천명당 발행부수는 2백85부에 불과하다.

한국은 4백12부로 선진국들의 평균치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신문들이 선진국 신문들처럼 깊이가 있는가.

초.중.고교생들의 학습량도 세계최고다.

OECD국가들의 평균보다 1.3에서 1.7배까지 많은 것이다.

초등학생의 경우 스웨덴은 연간 법정수업시간수가 6백24시간인데 비해
한국은 1천85시간으로 두배 가까이 되고 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이처럼 좋은 것은 없지만 문제는
양보다 질에 있다.

교육투자나 교원1인당 학생수에선 크게 뒤떨어지고 있다.

한국은 인구에 비례해서 대학생수가 세계 최고다.

4년제대학과 대학원의 재학생수가 인구 10만명당 3천4백18명으로 세계
1위이며 다음이 미국 3천3백50명, 호주 3천2백40명순이다.

이런 대학생수 세계최고가 과연 학문의 깊이와 연결되고 있느냐가 문제다.

이같은 여러 현상을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출판계의 현실일수 있다.

우리는 출판종수에서는 출판대국중의 하나다.

이것이 입학시험위주의 학습서나 쉬운 책이 대부분인 것이 흠이다.

성인들의 독서량이 일본의 절반밖에 안되며 깊이있는 책들은 팔리지
않는다.

모신문보도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어려운 책을 싫어한다고 한다.

도서관대출책들은 만화소설이나 무협지가 대부분이고 전공서적은 거의
외면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래가지고서 언제 깊이를 도모할 것인가.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1일자).